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어제책 2022.12.28.

헌책읽기 3 협궤열차



  전라도하고 경상도라는 고장을 가르는 말씨가 있습니다. 여수·순천·광양을 가르고, 진주·하동·거창을 가르는 말씨가 있어요. 순천·고흥이 말씨가 다르고, 하동·함안도 말씨가 달라요. 더 들어가면, 고흥이나 함안에서도 읍내하고 면소재지 말씨가 다르고, 더 깊이 들어서는 시골마을마다 말씨가 다릅니다. 그렇다면 인천하고 서울하고 수원하고 부천하고 시흥도 말씨가 다를 테고, 인천에서도 주안하고 석바위가 말씨가 다를 테며, 인천 창영동하고 송림동하고 도화동하고 숭의동도 말씨가 다르게 마련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를 헤아리면서 글을 쓰는 분은 몇이나 될까요? 《협궤열차》는 틀림없이 인천을 바탕으로 줄거리를 풀어내겠구나 싶어서 집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소설이라는 줄거리’를 볼 텐데, 저는 ‘인천이라는 삶자리’를 읽어 보았습니다. ‘수인선’을 탄 일은 아주 어릴 적 같아 잘 안 떠오르지만, 수인선을 디디면서 한나절 멍하니 걷던 일은 또렷이 떠오릅니다. 어린이·푸름이로 살던 여덟∼열아홉 살 사이에 젓가락 같은 쇳길(철길)을 으레 걸어서 오갔어요. 요새야 버스도 많고 자주 다닌다지만, 예전에는 서울·부산 아닌 데에서는 잦지 않았습니다. 걷는 사람이 수두룩했고, 칙칙폭폭 거의 안 다니는 쇳길을 디디며 오가는 사람도 제법 있어요. ‘인천사람이라면 이러지는 않을 텐데’ 싶은 대목을 내내 느끼며 《협궤열차》를 읽었습니다. 주안사람도 석바위사람도 이러지는 않다고 느끼며 읽었어요. 그냥 ‘글감’으로 좁은길(협궤열차)을 그렸을 테지요. 얼핏 구경한 모습이 아닌, 골목 한켠에 깃들어 보면서, 또 잿빛더미(아파트 단지)가 아닌 논밭에 소금밭이 너른 ‘귀퉁이 도시’를 살아내면서 좁은길 이야기를 써 보았다면 이 책에 ‘인천말씨’가 조금은 묻어났으리라 생각합니다. ‘문학으로 떨어지는 소설’이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수인선’을 다루면서 막상 수원을 얘기하는 글꾼은 없다시피 하고, 인천을 다뤄도 겉훑기로 딴 얘기만 편다는 소리입니다.


ㅅㄴㄹ


《협궤열차》(윤후명, 창, 1994.5.15.)


언제나 뒤뚱거리는 꼬마열차의 크기는 보통기차의 반쯤 된다. 통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며 앉게 되어 있는데, 상대편 사람과 서로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수원과 인천 송도 사이를 오가는 수인선 협궤열차이다. 전세계에서 유일하다고도 한다. “그거 트럭하고 부딪쳐도 넘어지겠군.” 누군가가 말한다. 실제로 그런 일도 있는 조그만 열차. (68쪽)


나는 달려가서 딸아이를 끌어안았다. “별일 있졌저.” “무슨 일?” 나는 겨울 추위에 빨갛게 상기된 딸아이의 볼을 쓰다듬었다. “차비를 안 가져왔거든.” “그래서?” 나는 물었다. “담에 갈 때 드린다고 했지.” 이렇게 수인선 협궤열차는 오늘도 하루에 세 번씩 다니고 있다. (69쪽)


그는 석바위가 고향이라고 하였다. 석바위는 주안에서 소래로 오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나는 석바위에서 소래 사이에 펼쳐진 논들의 고즈넉한 정적을 생각하며 사내에게 갑자기 오래 사귀어 온 것처럼 친근감을 느꼈다. 사내는 하룻밤 아무 데서나 지내고 내일 아침 영화를 촬영하는 곳으로 찾아가 볼까 하는 길이라고 말하며 담배를 땀바닥에 버리고 발로 문질렀다. 바람이 벌판을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112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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