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 / 숲노래 우리말

말 좀 생각합시다 74


 나멋너못


  1990해무렵(년대)에 어느 분이 벼슬판(정치판)에서 ‘내로남불’이란 말을 쓰면서 이 말이 확 퍼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벼슬판에서 쓰기 앞서도 사람들이 곳곳에서 제법 썼다고 느껴요. 저는 새뜸(신문·방송)에서 이 말을 떠들썩하게 쓰기 앞서도 여기저기에서 이 말을 들었거든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에서 앞머리를 딴 ‘내로남불’은 ‘노찾사’하고 비슷한 얼거리입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란 말마디에서 앞머리를 따서 ‘노찾사’라 했어요. 어느 대학교 노래패는 ‘노곳떼’란 이름을 썼는데 “노래하는 고깃떼”를 줄인 이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앞머리를 따서 줄이는 이름을 썼는지는 알 길이 없어요. 아마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썼구나 싶어요. 이름이 기니까 단출하게 쓰려는 마음일 테고, 어떤 일을 하는 무슨 모임인가를 감추려는 마음이 있으며, 쉽고 귀여우며 부드럽게 부를 이름으로 가볍게 줄이는 마음이었다고 느껴요.


  이렇게 몇 마디를 따서 줄이는 이름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한자말에도 영어에도 있고 일본말에도 있어요. 우리말에도 마땅히 있습니다. 모든 자리에서 긴 이름을 꼬박꼬박 다 말하기 힘들거나 번거로울 수 있거든요. 자주 쓰는 즐겁거나 사랑스러운 이름이니 가볍게 줄입니다.


  그런데 저는 ‘내로남불’이란 말을 처음 들을 적에 시큰둥했어요. 그무렵에 저는 딱히 짝꿍이 없어, ‘로맨스이든 불륜이든 할 일이 없다’ 보니 이런 말을 둘레에서 쓰거나 말거나 눈길이 안 가더군요. 그렇다고 짝꿍이 있고 아이를 돌보는 오늘이 되었대서 로맨스나 불륜을 할 일이란 없습니다만, 문득 생각합니다. 이런 자리나 느낌을 저라면 어떤 낱말을 엮어서 나타내겠느냐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나멋너못’이나 ‘내멋남못’ 같은 이름을 떠올립니다. “나는 멋있고 너는 못났어”요 “내가 하면 멋나고, 남이 하면 못나”예요. 수수하게 ‘외곬·외넋’이나 ‘외곬눈·외길눈’처럼 그려도 어울리지 싶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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