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넋/숲노래 우리말
곁말 82 불수레
푸른배움터(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열린배움터(대학교)를 다닌 1994년입니다. 열린배움터는 이태 남짓 다니고서 그만두는데, 인천하고 서울 사이를 새벽하고 밤에 오가는 길은 늘 북새통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바람이(선풍기)가 없이 미닫이(창문)를 여는 전철이 다닌 ‘인천―서울’ 길입니다. 후끈후끈한 수레가 서울로 들어서면 내내 땅밑을 다니는데 그저 끔직했어요. 불구덩(지옥)이 바로 이곳이로구나 싶더군요. 용케 인천·부천·수원 사람들은 이 모진 복닥판에서 납작이처럼 짓눌리거나 밟히면서 돈을 번다고 느꼈어요. “몇 해만 견뎌 서울로 옮겨서 이 모진 새벽길을 더는 안 겪겠다”고 말하는 분이 많았습니다. 예나 이제나 둘레에서는 ‘인천―서울’ 사이를 ‘지옥철’이란 이름으로 가리킵니다. 시골로 옮겨 살다가 오랜만에 이 붐비는 길에 납작납작 눌리던 어느 날 “불수레로구나.” 하고 외마디가 흘러나왔어요. 온누리를 불바다로 바꾸는 싸움수레인 불수레마냥, 사람들 몸마음을 너덜너덜 망가뜨리는 불수레입니다. 푸른지붕(청와대) 벼슬아치 가운데 불수레를 날마다 탄 사람은 없겠지요. 벼슬아치(공무원·정치꾼)나 길잡이(교사)나 글바치(작가)라면, 불수레를 겪어 보면서 서울을 숲으로 바꾸는 길을 찾아야지 싶어요.
불수레 (불 + 수레) : 1. 불을 얹거나 나르는 수레. 불에 타는 수레. 2. 불을 쏘거나 둘레를 불바다로 만드는 수레. 사람·삶터·마을·숲을 망가뜨리거나 죽이는 사나운 짓을 하려고 만든 수레. (← 탱크, 전차(戰車), 장갑차) 3. 사람들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모이는 바람에, 아주 좁아서 괴롭거나 고단해, 몸도 마음도 기운이 다 빠지면서 힘든 수레. (= 불구덩·납작길·복닥판·북새통. ← 지옥철地獄鐵, 러시아워, 교통난, 교통지옥, 교통체증, 교통혼잡, 혼잡, 만원滿員, 만석滿席, 풀full, 극성極盛, 극심)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