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물일기 -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존경해
진고로호 지음 / 어크로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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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2.12.4.

인문책시렁 253


《미물일기》

 진고로호

 어크로스

 2022.7.11.



  《미물일기》(진고로호, 어크로스, 2022)를 읽었습니다. ‘미물(微物)’은 “1. 작고 변변치 않은 물건 2. 인간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뜻으로, ‘동물’을 이르는 말 3. 변변치 못한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을 뜻하는 한자말입니다. 이 한자말을 써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작은하루’나 ‘작은이웃’처럼 책이름을 붙이면 한결 부드러이 이야기를 펼 만했으리라 느낍니다. 글쓴이 둘레에 있는 작은숨결을 노래하는 꾸러미이니 ‘작은삶’이나 ‘작은노래’나 ‘작은얘기’처럼 이름을 붙여도 어울려요.


  글감은 먼발치에서 안 찾아도 됩니다. 글감은 대단하거나 훌륭하거나 엄청나야 하지 않습니다. 삶자리 어디에나 흐르는 글감을 알아보거나 기꺼이 품으면 됩니다. 작은이웃을 눈여겨볼 수 있기에 뭇이웃을 아우를 수 있어요. 작은하루를 돌아볼 수 있기에 온삶을 어우를 만합니다.


  하늘을 가르는 새는 크지도 작지도 않습니다. 모두 새입니다. 아무리 커다란 새라 하더라도 하늘 높이 뜬 모습은 깨알 크기로 보입니다.


  땅바닥을 기는 개미는 작지도 크지도 않습니다. 모두 개미입니다. 아무리 작은 개미라 하더라도 땅바닥에 엎드려서 하루 내내 들여다보노라면 개미살림을 차근차근 헤아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지렁이나 파리더러 ‘작다’고 말할는지 모르나, 무엇이 작다는 뜻일까요? 사람은 코끼리나 고래더러 ‘크다’고 말하기 일쑤인데, 무엇이 크다는 뜻인가요? 크기란 무엇이고, 몸집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웃을 마주할 적에 몸집부터 보는지요? 동무를 사귈 적에 겉모습부터 살피는가요?


  흙을 만진 적이 없는 사람은 씨앗을 알 길이 없습니다. 씨앗을 손바닥에 얹고서 따스히 감도는 숨빛을 느낀 적이 없는 사람은 흙을 알 길이 없습니다. 작은이웃도 큰이웃도 우리가 마음을 기울여 바라보고 만나고 생각하기에 비로소 이웃입니다. 눈을 감거나 등을 돌리면 이웃이 아니고, 동무로 사귀지 못 해요.


  이 푸른별에는 사람만 안 삽니다. 이 푸른별에 사람만 살아남는다면 사람부터 다 죽습니다. 오늘 무엇을 보는지 스스로 물어봐요. 오늘 어디에 선 다리인지 스스로 되새겨요. 오늘 누구랑 말을 섞으면서 마음을 나누는지 스스로 곱씹어요. 겨울은 찬바람이 불어 겨울답고, 여름은 나무를 스치는 푸른바람이 불어 여름답습니다.


ㅅㄴㄹ


죽어가는 지렁이를 안타깝게만 여겼지 지렁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자웅동체, 눈과 코는 없고 입만 있으며,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정도였다. (22쪽)


파리는 해충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본 곤충이기도 하다. (58쪽)


작은 생명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는 사람의 인격이 훌륭하다는 보장은 없다. 인간은 평면적이지 않다. 자신의 반려동물은 소중히 여기면서도 다른 생명에게는 시니컬할 수도 있고,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않은 사람이지만 인간을 혐오할 수도 있다. (97쪽)


물고기를 함부로 대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살았다. 뒤늦게 이런 생각이 든다. 어릴 적, 횟감 물고기와 눈이 마주쳤을 때 들었던 목소리가 진실은 아니었을까. (120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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