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12.2.
숨은책 788
《二十世紀文學의 反逆》
헤르만 그리사 글
이동승 옮김
탐구당
1964.9.30.
어릴 적부터 책을 안 빌려읽었습니다. 누가 빌려준다고 하더라도 내키지 않았습니다. 빌려서 읽을 만하다면 스스로 새로 장만할 노릇이라 여겼어요. ‘읽을 책’은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한 벌 훑고서 끝이 아니에요. ‘읽을 책’이란 곁에 두고서 틈틈이 되읽고, 다시 집어들 적마다 새롭게 느끼고 배우는 길잡이라고 느껴요. 같은 책을 며칠째 되읽는 모습을 보는 동무는 갸우뚱하며 “넌 참 알쏭하다. 어느 책은 훌떡 읽어치우고, 어느 책은 며칠째 들고 다니네?” 하고 묻습니다. “응, 한 벌 읽고 나면 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책이 있더라. 마음이 뭉클해서 다음 쪽을 차마 못 펼치고 며칠째 들고 다니는 책도 있고.” ‘探究新書 21’로 나온 조그마한 《二十世紀文學의 反逆》은 겉그림이 뜯긴 채 ‘영락중·상업고등학교 도서실’에 오래 깃들었다가 버림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영락장서 第 783號’를 받고, 나중에 ‘第 143號’로 바뀌었는데, 끝내 빌려읽은 손길을 못 탔어요. 이대로 헌종이(폐지)가 될 뻔하다가 헌책집 지기가 건져냈고, 한참 잠들다가 제 손으로 넘어옵니다. 한켠에 글붓으로 ‘새로 산 날’을 적습니다. 한자투성이에 깨알같은 글씨를 나중에 기꺼이 읽어 줄 뒷내기가 있을는지 모르나, 오래 손길을 기다린 책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