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11.2.


《이것으로 충분한 생활》

 하야카와 유미 글/류순미 옮김, 열매하나, 2021.5.1.



한낮 가을볕을 쬔다. 마당에 서서 쬐고, 바깥마루에 누워서 쬔다. 살짝 땀이 돋는다. 처마 밑으로 깊이 들어오는 볕살을 보면, 한가을을 지나 겨울로 가는구나 싶다. 감은 눈이 온통 새하얗게 부서지는 기운을 느낄 즈음 일어선다. 풀꽃나무는 이렇게 햇볕을 머금으면서 튼튼할 수 있구나. 사람도 고요하면서 차분히 햇볕을 머금을 적에는 아프거나 앓을 일이 없을 텐데. 저녁에 자전거로 면소재지 우체국을 다녀온다. 맨손으로 자전거를 달리지만 시원하다. 《이것으로 충분한 생활》을 읽었다. 내가 어릴 적에 둘레 어른들은 ‘이것으로·저것으로·그것으로’처럼 말하지 않았고, 그리 말하지 않는다고 일깨웠다. 요새는 이렇게 수수한 우리말씨를 짚는 어른이 없을까? 짚어 주어도 못 느끼거나 안 배울까? 우리말로 하자면 “이만하면 넉넉한 삶”이거나 “이처럼 아늑한 살림”이거나 “이대로 즐거운 나날”이다. 어느덧 삶짓기로 말을 물려주거나 가르칠 어른이 사라진 판이라 할 만하니, 오늘날 쏟아지는 책 가운데 우리말씨를 살리는 글을 아예 못 본다. 보임틀(텔레비전)을 멀리하면서 글을 모르고 살던 할머니가 입으로 들려주던 말에서 겨우 우리말다운 우리말을 엿본다. 우리는 이대로 좋으니 스스로 새롭게 배울 마음이 없을 수 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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