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42 익숙한



  즐겁게 읽은 책이기에 곁에 놓습니다. 아름답게 읽은 책이기에 고이 품습니다. 사랑스레 읽은 책이기에 두고두고 건사합니다. 새로 펼 적마다 반갑게 생각을 북돋우기에, 익숙하거나 똑같은 책이란 없습니다. 펴냄터(출판사)에서 일하며 길장사(가판)를 나온 2000년 봄날이었을 텐데, 어느 아이가 어머니 옆구리를 잡고 쭈뼛쭈뼛 서면서 저를 쳐다보더군요. 어머니 말씀으로는 “얘가 이 그림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1000번도 넘게 읽었어요. 다른 그림책이 있어도 이 그림책을 그렇게 좋아해서 책이 낡으면 새로 사 줘요.” 하시더군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을 만든 사람이 궁금하다고 해서 찾아왔답니다.” 하고 덧붙이셔서 ‘파는 일(영업부)’을 하는 사람이지만 그 그림책하고 얽힌 이야기를 잔뜩 들려주었고, 덤으로 몇 가지 책을 주었어요. 아니, 제 일삯으로 사서 ‘그냥 주는 척’했습니다. 그날 저녁 ‘나는 한 가지 책을 1000벌을 되읽으면서 새롭게 새길 줄 아는가?’ 하고 돌아보았어요. 곰곰이 보면, 아이들은 익숙한 책도 늘 새롭게 즐길 줄 아는 멋지고 부드러운 눈길이자 손길이로구나 싶어요. 아이하고 노는 어른이라면 이 깊고 너른 사랑을 아이한테서 배우겠지요. 마음을 사로잡는 책이란 끝없이 솟는 맑은 샘물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숲노래 씨가 쓴 책을

1000벌을 읽어 줄 이웃님이 있어도

기쁘고 아름다울 텐데

10벌을 읽어 주는 이웃님이 있어도

1벌을 읽어 주는 이웃님이 있어도

즐겁고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해요.


곁에 《곁말》하고 《곁책》을

놓아 보는 가을날 누려 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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