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8.2.


《고든박골 가는 길》

 이오덕 글, 실천문학사, 2005.4.15.



비는 그친 듯하고 해가 나는 듯하지만 구름이 매우 짙다. 작은아이랑 골짜기로 걸어간다. 얼마나 걷는가 따지니 30분이로구나. 물이 잔뜩 불었다. 물살에 몸을 맡긴다. 물속으로 잠기면서 ‘나’를 잊는다. 물밖으로 나오면서 ‘나’를 돌아본다. 다시 물속으로 잠기면서 물방울을 바라보고, 또 물밖으로 나오면서 우렁찬 골짝물 소리를 가로지르는 새소리하고 풀벌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사람들이 쉼철(휴가기간)에만 어쩌다가 찾아왔다가 슥 떠나는 골짜기나 바다나 숲이 아닌, 늘 이 터전을 품고 누리고 가꾸고 아낄 수 있다면, 이 나라도 우리 넋도 활짝 피어나면서 눈부시리라 본다. 《고든박골 가는 길》은 판이 끊어진 지 오래이다. 지난 2005년에 ‘두툼종이(양장본)’로 나올 적에 꽤 못마땅했다. 작고 수수하게 꾸며서 사람들이 늘 곁에 두면서 숲빛을 품도록 이바지하는 노래책(시집)으로 선보이기를 바랐으나, 실천문학사도 한길사도 ‘떠난 어른을 기린다는 뜻’은 ‘두툼종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라. 그래, 떠난 어른을 기린다면서 이 노래책을 제대로 읽히려는 마음은 없지. 그대들 펴냄터(출판사)에서 이오덕 어른 책을 내놓았다는 보람(훈장) 하나 얻으면 그만이었겠지. 조용히 되읽어 본다. 꾀꼬리 노래를 듣는 곁에서.


불같이 새빨간 넝쿨딸기는 / 줄줄이 익어서 나를 기다려 /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를 날마다 기다려 / 나 따먹어라 / 나 따먹어라 / 요렇게 새빨갛게 잘도 익었단다 / 서로 다투어 제 얼굴 자랑하는데, / 가시에 손을 찔려도 좋아 / 한 움큼 따서 입에 털어 넣고 / 또 한 움 따서 털어 넣고 / 그러면 어느새 꾀꼬리는 / 머리 위 소동나무 위에 와서 / 니하래비꼬끼달래용! / 니하래비꼬끼달래용! / 그렇게 고운 목소리로 울었지. (감자알이 굵어 갈 때/59쪽)


아, 내가 죽을 때도 / 이렇게 땅을 안고 / 땅에 안겨 갈 것이다. / 죽어서 땅이 될 것이다. (잠 아니 오는 밤/164쪽)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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