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한 줄을 (2022.5.2.)

― 대구 〈bookseller 호재〉



풀밭 한복판에 선 우람한 나무는 누구나 기운을 푸르게 받는 쉼터라고 느낍니다. 마을 한켠에 선 책집은 누구나 생각을 맑게 짓는 이음터라고 느껴요. 책숲(도서관)은 책 하나를 여러 사람이 돌려읽거나 빌려읽으면서 빛나는 자리입니다. 헌책집은 책 하나를 오직 한 사람이 물려받듯 만나서 장만하기에 빛나는 터예요. 책숲은 마을이나 나라에서 한뜻이 되어 ‘손길책’을 이루는 곳이라면, 헌책집은 책집지기하고 책손 두 사람이 한사랑이 되어 ‘손빛책’을 나누는 데라고 느낍니다.


새책집은 어떤 숨결일까요? 큰 새책집은 온갖 책을 고루 갖추어 책바다를 베푸는 품입니다. 작은 새책집은 살림자리에 살뜰히 추려서 두고두고 곁에 둘 책 하나를 조촐히 갖추어 책밭을 짓는 품입니다.


책집마다 뜻이 다르고, 마을마다 자취가 다르고, 사람마다 마음이 다릅니다. 다 다른 뜻이며 자취며 마음은 언제나 숲에서 태어납니다. 책숲(도서관)도 책집(책방·서점)도 숲이라는 바탕을 품고서 보금자리를 일구어 살아갈 사람이 푸른넋으로 오늘을 바라보고 사랑하려는 생각을 씨앗처럼 심는 쉼터라고 느껴요.


대구 저잣골목 어귀에 새롭게 여는 〈bookseller 호재〉를 찾아갑니다. 이제 막 자리를 여는 헌책집 담에는 붉은빛으로 감싼 ‘김수영 노래책(시집)’이 있습니다. 김수영 님이 남긴 글에 ‘풀’이 있고, ‘쏠(폭포)’이 있습니다. 풀이란, 숲을 이루는 푸른 바탕이고, 쏠이란, 바다로 나아가는 맑은 물길입니다. 김수영 노래책을 담에 놓아 내보이는 이곳은 바람을 품는 풀빛 같은 책을 만날 만할 테고, 바다를 그리는 쏠빛 같은 글을 마주할 만할 테지요.


오늘 새벽에 ‘이시무레 미치코’ 님 글살림 이야기를 노래꽃(동시)으로 써 보았습니다. 이웃나라 글순이였던 이녁이 남긴 《슬픈 미나마타》하고 《신들의 마을》은 우리말로도 나왔는데 참 안 읽혔어요. 마을·사람·바다·숲·어린이·풀꽃나무·숲짐승·하늘·시골을 사랑하는 숨결을 글로 옮겼고, 벼슬꾼(공무원)·글바치·먹물·돈꾼이 얼마나 어리석은 굴레에 스스로 갇히는지를 글로 담았어요.


책은 한낱 종이꾸러미가 아닙니다. 책은 고작 글묶음이 아닙니다. 책은 숲에서 푸르게 자라고 살아가던 나무를 옮긴 꾸러미입니다. 책은 우리가 스스로 살림을 짓는 사랑으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삶을 여민 묶음입니다. 여러 사람 손을 타면서 새롭게 반짝이는 손빛책(헌책)입니다. 마음으로 이웃할 책손을 헤아리는 책집지기는 오늘도 ‘새로운 헌책’을 다독이고 보듬습니다. 책짐을 한가득 짊어지고서 대구버스나루에서 광주버스나루를 거쳐 고흥으로 한밤 별빛을 안고서 돌아갑니다.



《이게 다예요》(마르그리트 뒤라스/고종석 옮김, 문학동네, 1996.3.14.첫.1996.3.25.2벌)

《몽실 언니》(권정생, 창작과비평사, 1984.4.25.첫/1990.8.25.고침/1990.9.25.고침2벌)

《마음길》(최종두, 교음사, 1988.1.10.)

《밥장님! 어떻게 통영까지 가셨어요?》(밥장, 남해의봄날, 2019.8.25.)

《내가 만난 하나님》(김승옥, 작가, 2004.5.3.)

《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오탁번, 청하, 1985.8.30.첫/1987.7.10.2벌)

《만우절》(찰스 램/조경희 옮김, 자유문학사, 1987.2.10.)

《한 자락 바람이 되고파》(임선희, 자유문학사, 1986.8.30.)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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