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2.6.5.


《큰도둑 거믄이》

 황해도 옛이야기·이철수 그림, 분도출판사, 1986.7.



비가 온다. 비가 오니 빗소리를 듣는다. 우리 마을에 예전 마을지기(이장)님 짐차만 있던 무렵에는 빗소리를 흩뜨리는 자잘한 부릉소리가 없었으나, ‘큰돈 들여 서울집을 흉내낸 전원주택’이 곳곳에 들어선 뒤로는 곧잘 부릉소리가 빗소리를 건드린다. 우리가 마음을 곧게 다스리면 부릉이를 몰더라도 빗소리에 별빛소리에 바람소리에 풀소리를 고스란히 품으면서 밝다. 우리가 마음에 미움이나 불길을 터럭만큼이라도 얹으면 아뭇소리도 못 듣는다. 가랑비는 함박비가 되고, 마당을 후두두두 두들기는 소리는 매캐한 소리까지 녹인다. 그래, 서울 한복판에서도 함박비가 오면 부릉소리를 모두 씻어내겠지. 시원하다. 어젯밤에 마당에 서서 구름하늘을 보며 비바라기춤으로 놀았는데, 구름님이 어여삐 여겨 빗소리를 베풀어 주네. 개구리노래가 어우러지며 신난다. 《큰도둑 거믄이》를 오랜만에 되읽는다. 스물너덧 살 무렵 이 작은 그림책을 처음 쥘 적에는 “내가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읽혀야지” 하고 생각했으나, 정작 마흔일고여덟 살인 오늘 되읽자니 엉성하거나 아쉬운 대목이 많이 보이고, ‘우리글로 쓴’ 책인데 하나도 우리말스럽지 않다. ‘거믄이’라는 이름 하나는 살리되, 이야기를 엮는 말씨는 죄 일본 한자말이나 일본말씨로구나.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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