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꽃/숲노래 우리말
나는 말꽃이다 88 그렇구나
고삭부리로 어린 날을 살아온 터라 ‘좋고 나쁘고’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 하루였습니다. 툭하면 앓거나 아프고, 웬만한 먹을거리는 몸에 안 받아 한참 배앓이를 하거나 게웠습니다. 흔히 말하는 ‘좋은밥’은 저한테 안 좋기 일쑤였고 ‘나쁜밥’이라 일컫더라도 저한테 안 나빴습니다. 어릴 적하고 싸움판(군대)에서 겪은 노리개질(성폭력)은 잊고픈 멍울이었으나, 마흔다섯 살을 넘던 어느 날 “이런 일조차 모두 삶길”인 줄 넌지시 느꼈습니다. 이 길은 나쁠까요? 저 살림은 좋을까요? 이 말은 나쁜가요? 저 말은 좋은가요? 모든 삶이며 길에는 뜻이 있고, 모든 낱말에도 뜻이 있습니다. 그냥 살아내는 하루가 아니고, 그냥 태어난 말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새롭게 맞이하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슬기롭게 지을 사랑을 들려주는 삶이자 말입니다. 말꽃(사전)을 짓고 엮으면서 으레 외치는 “그렇구나.”입니다. 말밑을 캐며, 말풀이를 마치며, 보기글을 보태며, 비슷한말을 가르며, 겹말이나 얄궂말(순화대상용어)을 손질하며, 누가 옳거나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다고 느껴요. 좋은말도 나쁜말도 아니라고 여겨요. 반가이 배우고, 새롭게 살아가며, 슬기로이 사랑하는 신바람나는 하루를 그리면서 말빛을 깨닫고 사람빛을 알아가는구나 싶어요.
ㅅㄴㄹ
어릴 적에 겪은 노리개질을 털어놓으면서
멍울을 씻는 순이가 늘어납니다.
꽤 많은 돌이도 순이 못지않게
어릴 적을 비롯해 군대에서
노리개질로 마음이며 몸에
생채기랑 멍울이 생깁니다.
아직 숱한 돌이는 이녁 생채기랑 멍울을
그대로 품기만 하고서 말을 못 하기 일쑤라고 봅니다.
모든 아픈이 마음에
멍울이 아닌 꽃망울이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