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숲노래 우리말 2022.4.21.
곁말 46 손빛책
누리책집 ‘알라딘’은 “알라딘 중고서점·중고샵”이란 이름을 퍼뜨렸습니다. 이곳에서는 ‘헌책’을 팔지만 정작 ‘헌책’이란 우리말을 안 쓰고 ‘중고서점’이란 일본 한자말을 쓰고, ‘중고샵’ 같은 범벅말(잡탕언어)을 씁니다. 왜 “알라딘 헌책집·헌책가게”처럼 수수하게 이름을 붙이려고 생각하지 못 할까요? 아무래도 ‘헌옷·헌책·헌집’이란 낱말에 깃든 ‘헌(헐다·허름)’이 어떤 말밑(어원)인지 모르기 때문일 테지요. ‘허허바다(← 망망대해)’란 오랜 우리말이 있어요. 웃음소리 가운데 ‘허허’가 있고, ‘헌걸차다’란 우리말도 있습니다. ‘허’는 ‘쓴·빈·없는’뿐 아니라 ‘너른·큰·하나인’을 나타내는 밑말(어근)이기도 한데, ‘하·허’로 맞물립니다. ‘하늘’을 가리키는 ‘하’나 ‘헌책’을 가리키는 ‘허’는 같은 말밑이요 밑말입니다. 사람 손길을 타기에 헌책이고, 사람 손길은 하늘빛을 담게 마련이라, ‘헌책 = 하늘빛책’인 셈입니다. 투박한 이름이 외려 눈부신 셈이에요. 다만, 이제는 새말을 지을 수 있어요. 손길을 타기에 ‘헌책’이라면, 말 그대로 ‘손길책’입니다. 손길을 타서 빛나는 책이라면, 그야말로 ‘손빛책’입니다. 이제 저는 ‘손길책집’에 마실하면서 ‘손빛책지기’님을 만납니다.
[숲노래 말꽃]
손빛책 (손 + 빛 + 책) : 손빛이 깃들거나 흐르거나 퍼지거나 이은 책. 손을 타서 읽히는 동안 새롭게 빛나는 책. 사람들 손을 돌고돌면서 새삼스레 읽혀 옛빛에서 새빛을 얻도록 잇는 책. 오늘 우리 손을 새롭게 받아서 빛나는 오래된 책.
.
손길책 (손 + 길 + 책) : 손길을 받거나 타거나 얹거나 묻거나 담은 책. 손길을 받거나 담으면서 읽히는 동안 새롭게 스며드는 책. 사람들 손길이 돌고돌면서 새삼스레 읽혀 옛삶·옛살림·옛길에서 새삶·새살림·새길을 헤아리도록 돕거나 이끄는 책. 오늘 우리 손길을 새롭게 받아서 아름답거나 즐거운 오래된 책.
.
헌책 : 이미 쓴 책. 손길을 타서 읽힌 뒤에 새롭게 읽힐 책. 사람들 손길을 돌고돌면서 새삼스레 읽혀 옛빛에서 새빛을 얻도록 잇는 책. 오늘 우리 손길을 새롭게 받아서 빛나는 오래된 책.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을 꾸리는 사람.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오래도록 고맙게 온갖 책을 만나는
이음길 노릇을 해온
알라딘에서
그야말로 오래오래
참으로 숱한 책을 장만했는데
알라딘이 '책집 이름'을
이제는 스스로 새롭게 빛내도록
확 바꿀 수 있기를 빌어 본다.
굳이 '낡은' 이름에 얽매여야 할까?
책집 얼개를 새롭게 하고 싶다는 뜻을
알라딘이 펴려고 한다면
'중고서점'도 '중고샵'도 아닌,
"알라딘 손빛책"이라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