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

나는 말꽃이다 78 불길



  불은 여러 쓰임새입니다. 활활 태워서 재를 남깁니다. 태우기에 따뜻하거나 뜨겁고, 밥을 끓이거나 국을 익힙니다. 태워서 재가 남기에, 재로 빨래를 하거나 이를 닦거나 똥오줌을 재워 거름으로 거듭나도록 다스립니다. 불을 피우니 밝습니다. 불빛이 되니 길잡이가 됩니다. 그런데 마음에 불길이 치솟으면 그만 스스로 까맣게 타면서 사랑도 꿈도 이야기도 죄다 사라지고 말아요. 마음에 왈칵하고 불을 지피면 어느새 스스로 일구던 살림이며 삶을 모조리 잿더미로 바꾸고 말지요. 불(화·분노·증오)은 나쁘지도 좋지도 않습니다. 그저 불길과 불빛이라는 결에 따라 쓰임새가 있습니다. 들불처럼 일어나기에 확 갈아엎지만, 모두 태우지요. 처음부터 새로 지어야 합니다. 마음에 일렁이는 불길을 잠재우거나 다스린다면, 태워서 잿더미로 바꾸는 숨결이 아닌, 스스로 기운을 끌어내는 따스한 빛살이 될 만합니다. 버럭버럭 성을 내며 쓰는 글이라면 이웃이며 동무를 불사르는 무시무시한 씨앗이 퍼집니다. 차근차근 눈을 밝히며 쓰는 글이라면 둘레에 포근하면서 상냥하고 어진 씨앗을 심습니다. 낱말책에 담을 낱말·뜻풀이·보기글·보탬말은 ‘타오르는 불길’보다는 ‘환한 햇빛’이라는 마음이 될 적에 차근차근 달래며 가꿀 만합니다.


성난 아이 마음에 부디 불씨가 아닌 꽃씨가 자라나면 좋겠어요.

怒っている子供の心にどうか火種ではなく、花の種が育ってほしいです。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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