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2.3.6.
숨은책 627
《북두의 권 11》
미진 기획
박진 옮김
미진문화사
1990.9.30.
1988∼90년 세 해를 제 삶에서 지웠습니다. ‘중학교’라는 곳을 다니는 내내 “여기는 학교가 아닌 감옥이자 지옥일 뿐이니, 오로지 내 삶만 바라보자” 하고 다짐했어요. 기껏 열네 살인 또래들은 입만 열었다 하면 막말이 쏟아지고, 길잡이도 똑같고, 어른아이 모두 온하루가 주먹질이었습니다. 둘레에 눈감고 “죽은 듯이 시험공부만 하자”고 생각했어요. 이즈음 또래 사내들은 손바닥보다 작은 《북두의 권》하고 《드래곤볼》을 글붓집(문방구)에서 사다가 돌려읽더군요. 주먹질이 춤추는 그림에 사람을 갈기갈기 찢어죽이는 모습이 뭐가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는데, 여리거나 작은 또래를 ‘만화책에서 본 모습 그대로 괴롭히는 짓’을 날마다 해대더군요. 《北斗の拳》은 ‘부론손 글·하라 테츠오 그림’으로 1983∼88년에 일본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는 몰래책(해적판)으로 마구 찍어 아이들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북두의 권》은 나쁜책이 아닙니다만, 어떤 줄거리로 어떤 삶을 그리는가를 풀어내는 어른이란 그때나 요즘이나 없고, 그저 싸움박질을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보여주는 판입니다. 〈오징어게임〉도 그렇지요. 이 나라 어른이란 사람은 돈에 눈멀어 주먹질을 자꾸 그리기만 할 뿐입니다. 어깨동무하고 사랑을 그릴 줄 몰라요.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