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12.22.
숨은책 600
《우편번호부 1971》
체성회 엮음
체신부
1971.3.1.
요새는 우체국에서 우편번호부를 안 나눠 줍니다. 길이름(도로명 주소)을 요즈음처럼 가르기 앞서는 우편번호부가 단출했으나, 이제는 깨알글로 두툼한 책 석 자락입니다. 예전에는 글월을 자주 많이 쓰는 사람한테 작고 단출한 우편번호부를 나누어 주었어요. 해가 넘어갈 무렵이면 우체국 일꾼한테 “새해 ‘우표발행계획표’ 나왔나요?” 하고 여쭈었습니다. 봄에는 “우편번호부가 새로 나왔나요?” 하고 여쭈었어요. 《우편번호부 1971》는 제가 태어나기 앞서 나옵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 심부름으로 우체국에 다녀오며 얻은 우편번호부도 1971년치처럼 얇고 작았습니다. 2000년 무렵까지도 이렇게 작다가, 2000년을 넘어서며 크고 두툼했는데, 하도 사라지는 골목이 많고 새로 올리는 잿빛집(아파트)에 큰집이 늘다 보니 우편번호를 촘촘히 가르는 판입니다. 어릴 적에는 이따금 우편번호부를 들추면서 낯선 고장을 하나하나 떠올렸어요. “아, 이곳에 가 볼 수 있을까?” 혼잣말을 하면서 마음으로 나들이를 다녔습니다. 우편번호를 따라 인천에서 강원도로, 경상도로, 전라도로, 제주도로, 충청도로 넘실거렸습니다. 나들이는 들숲바다를 품고 해바람비를 마주하는 느릿느릿 느슨한 길입니다. 요새는 길이 너무 크고 많고 빠르기까지 합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