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곁노래

곁말 23 먹깨비



  저는 어릴 적에 무엇이든 참 못 먹는 아이였습니다. 스무 살까지 변변하게 안 먹으면서 살았는데, 싸움터(군대)에 끌려갈 적에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나는 김치뿐 아니라 못 먹는 밥이 잔뜩 있는데, 그곳(싸움터)에서는 주는 대로 안 먹으면 얻어터지잖아? 얻어터지면서 먹을 바엔 입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생각하지 말고 그냥 얼른 쑤셔넣고 끝내자.” 참말로 스물여섯 달 동안 맛이고 뭐고 안 가렸습니다. 밥판에 뭐가 있는지 안 쳐다보았습니다. 썩었는지 쉰내가 나는지 안 따졌어요. 배에서 다 삭여 주기를 바랐습니다. 마음에 새긴 말 때문인지 싸움터에서 밥 때문에 얻어맞거나 시달린 일이 없습니다. 싸움터에서 풀려난 뒤에라야 마음을 풀고서 몸한테 속삭였어요. “고마워. 몸이 이렇게 버티어 주어 살아남았구나. 앞으로는 몸이 거스르는 밥은 손사래칠게.” 우리 어머니는 입이 짧은 막내를 늘 걱정했습니다. 잔뜩 먹어야 한다고, 먹보가 되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저는 어머니 뜻하고 달리 먹보도 먹깨비도 먹돌이도 먹꾼도 안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깨비로 나아갔어요. 책깨비가 되고 글깨비에다가 살림깨비에 자전거깨비, 또 시골깨비가 되었어요. 이제는 숲깨비에 풀꽃깨비에 나무깨비에 바람깨비로 하루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ㅅㄴㄹ


먹깨비 (먹다 + 도깨비) : 잘 먹는 사람. 밥을 즐기는 사람. 맛있게 잘 먹거나 실컷 먹으려고 하는 사람. 먹는 데에만 마음을 쓰는 사람. 남보다 더 먹으려고 나서는 사람. 마구 먹어치우려고 하는 사람. 마구 먹어치우려는듯 나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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