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곁돈 (2021.9.16.)
― 제주 〈노란우산〉
어제 낮에 제주 〈책약방〉 지기님이 전화해 주셔서 몇 마디를 나누다가 서귀포에 있는 〈노란우산〉이 불타서 안타깝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루를 지난 아침에 〈책약방〉 지기님이 누리글집에 쓴 글을 읽고서 어떤 이야기인가를 조금 어림했습니다. 열 몇 해 앞서 서울 용산 〈뿌리서점〉이 통째로 물에 잠겨서 책을 모두 버려야 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달삯을 내고 지내는 〈뿌리서점〉은 집임자(건물자)한테서도 보험회사한테서도 한 푼을 받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빗물이 마구 새서 책이 다 젖더라도 ‘시민단체’인 집임자는 팔짱을 꼈고, 보험회사는 ‘화재보험’만 들었을 뿐 ‘수재보험’이 아니기에 도울 수 없다는 말만 했다더군요.
얼마나 이바지할는지 모르지만, 살림돈을 조금 덜어서 한손을 거들었습니다. 뜻을 모으고 싶은 분은 ‘성금’을 보내면 좋겠다고 하던데, 어쩐지 ‘성금(誠金)’이란 한자말은 안 쓰고 싶습니다. 제가 짓는 우리말꽃을 거드는 이웃님이며, 제가 꾸리는 책숲(도서관)을 돕는 이웃님은, ‘이바지돈’이나 ‘뒷배’ 같은 이름을 씁니다. 문득 새말을 하나 지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럴 적에 ‘도움돈’이나 ‘보탬돈’ 같은 말을 제법 씁니다. 이 말도 좋으나 다른 말을 더 그립니다. 뜻을 모은다는 얼거리로 ‘뜻돈’이란 이름을 지어 봅니다. ‘뜻돈’도 꽤 마음에 들지만 더 생각해 봅니다. 꽃길을 걷듯 꽃살림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는 마음으로 ‘꽃돈’이라 해볼 만합니다. 이런 이름 저런 이름 다 마음에 드는데 더 생각해 보다가 ‘곁돈’을 떠올립니다.
제가 올해에 새로 낸 《곁책》이 있기도 하고, 함께 살아가는 님한테 ‘곁님’이란 이름을 새로 지어서 붙이기도 했듯, 제가 쓸 새말이라면 ‘곁 + 돈’이 한결 어울리겠구나 싶습니다. 즐거운 자리에서도, 궂긴 자리에서도 이 말 ‘곁돈’을 쓰자고 생각합니다. ‘축의금·찬조금·부의금·후원금’ 모두 이 ‘곁돈’으로 갈음해 보자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씨앗돈’ 같은 이름을 씁니다. 조그맣게 모아서 함께 큰일을 해보자고 할 적에는 ‘씨돈·씨앗돈’ 같은 이름을 써요. 그때그때 헤아리면서 우리 삶을 꽃다이 가꾸려는 뜻을 모은다면, 흔히 쓰는 낱말 하나부터 새롭게 갈무리한다면, 우리 오늘은 더욱 푸르면서 아름답겠지요. 곁에서 마음을 기울이는 이웃은 온누리 곳곳에 물결처럼 들꽃처럼 가을바람처럼 흐르리라 생각합니다.
곁돈 모으기 → 신한은행 100 034 125904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정병규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사진은 뿌리서점.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