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9.9.
숨은책 548
《남영동》
김근태 글
중원문화
1987.9.30.
서울에서 몇 해를 살던 지난날(1995∼2004), 남영동만큼은 어쩐지 가기 싫었습니다. 그곳은 책집이 없다시피 하기도 했으나, 숙대 앞하고 고작 한길 하나로 엇갈리는데 늘 소름이 돋아요. 한창 《보리 국어사전》을 엮을 적에 김근태 님을 얼결에 밥집에서 뵈었습니다. “난 고문받은 다음에 이가 망가져 딱딱한 밥은 못 먹고, 걸음도 잘 못 걷습니다. 편식하는 것처럼 보일 텐데 이해해 주세요.” 하면서 절뚝이십니다. 《남영동》에 흐르는 짜르르한 글이 확 떠올랐습니다.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은 ‘건축가 김수근 작품’입니다. 사람을 괴롭혀 거의 죽음으로 내몰아 ‘머리에 든 이야기’를 몽땅 털어놓도록 짓밟는 터전을 ‘번뜩이는 눈빛과 손길’로 지어냈다지요. 그곳을 거치고서 살아남은 사람이 생채기를 온몸에 아로새긴 다음에 글로 남겼기에, 나라에서 이쁨받은 건축가 한 사람이 지은 집이 얼마나 무시무시했는지 제대로 알려졌습니다. 이제 ‘남영동 대공분실’은 없다지만, 우리 목소리는 얼마나 마음껏 날갯짓을 하면서 온누리를 꽃밭으로 물들일 수 있는지요?
85년 9월초 남영동에서 전기고문, 물고문에 못 견뎌 나는 발가벗기고 두 눈이 가려진 채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면서 항복한다고 용서해 달라고 두 손으로 빌었다. 그때 고문자인 김수현, 백남은, 그리고 고문 전문기술자 입에 번졌던 소리없는 웃음, 그 웃음을 나는 절대로 잊을 수 없다. (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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