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아이를 사랑하나요 (2021.7.29.)

― 부산 〈책과 아이들〉



  아이를 낳기 앞서까지는 스스로 ‘사랑’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입이나 글로 곧잘 ‘사랑’을 읊더라도 ‘참사랑’이라기보다는 어쩐지 ‘입에 발린 겉사랑’에 맴돌지 싶었어요. 그래서 2008년에 큰아이를 낳아 돌보는 살림길을 걷기 앞서까지 제가 마음으로 담은 사랑은 ‘책사랑·책집사랑’하고 ‘말사랑·숲사랑’입니다. 물려줄 만한 살림을 짓지 않을 적에는 사랑이 아니더군요.


  어린이책은 어린이일 적에는 거의 못 읽거나 안 읽었습니다. 국민학교란 이름이던 곳을 1982∼87년 사이에 다닐 무렵에는 심부름하고 짐(숙제)이 늘 넘쳤고, 틈나면 동무하고 뛰놀았고, 소꿉돈을 모아 그림꽃책(만화책)을 사읽었어요. 그때에는 알뜰한 어린이책이 드물기도 했는데, 싸움판(군대)을 마치고 앞길을 새로 그리던 1998년 1월 4일 인천 배다리 헌책집에서 《몽실 언니》를 처음으로 읽던 날 비로소 어린이책에 눈을 떴고, 이날부터 쌈짓돈을 털어 ‘어린이일 적에는 못 읽은 어린이책’을 하나씩 챙겨 읽었어요.


  둘레에서 그러더군요. “애 낳았냐?” 하고. 짝꿍조차 없는데 아이는 무슨 아이가 있겠어요. 어른만 읽는 책(인문책)은 허울이 많고 일본스런 한자말을 고스란히 쓰기에 읽으면 읽을수록 굳이 되읽을 마음이 안 들지만, 아름다운 어린이책은 언제나 새롭게 되읽으면서 마음이 찌르르 울린다고 느껴요.


  부산에서 1997년부터 어린이책밭을 일군 〈책과 아이들〉을 2021년 여름에 이르러 비로소 찾아갑니다. 인천·서울·충주에서 살던 예전에도 멀었지만, 고흥에서 사는 오늘도 멀다는 핑계로 이제서야 걸음했는데, 길턱을 넘어서며 책시렁하고 책마루를 바라보자마자 “아, 이곳은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책샘터이자 책쉼터로구나” 싶어요. 책집지기 손길이 구석구석 알뜰살뜰 스며서 가볍게 빛납니다.


  아이한테는 책을 많이 읽혀야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아무 종이책을 안 읽혀도 될 만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때를 느끼면 제대로 찾아서 챙겨 읽기 마련입니다. 아이는 적어도 열두 살까지, 때로는 스무 살이나 서른 살까지, 때로는 마흔이나 쉰 살에 이르도록 실컷 뛰놀면서 노래하고 춤눌 노릇이지 싶어요. 책을 더 많이 갖춘 책집도 좋습니다만, 아이들이 뒹굴고 떠들고 소리치고 뛰고 달릴 마당이 있는 책집이 늘면 한결 좋겠어요. 아이들이 책으로 나무를 만나기보다, 맨손으로 나무를 타고 오르며 새랑 벌나비하고 눈을 마주치면서 나무를 사귀면 좋겠어요.


  아직 부산시에서 어린이책집 〈책과 아이들〉한테 보람(상)을 안 주었지 싶은데, 뭐 감투꾼(공무원) 스스로 책집마실을 안 하면 책집이 어떤 샘터이자 쉼터요 놀이터인 줄 모르겠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바로 알아보면서 눈빛을 반짝입니다.


ㅅㄴㄹ


《길모퉁이의 짐할아버지》(엘리너 파전/장숙자 옮김, 유진, 2001.5.1.)

《불구두와 바람샌들》(우르줄라 뵐펠/장숙자 옮김, 유진, 2000.12.20.)

《반디 아빠의 이상한 하루》(손연자, 푸른책들, 2001.11.10.)

《에밀, 위대한 문어》(토미 웅거러/김영진 옮김, 비룡소, 2021.3.19.)

《와그르르 와그르르》(네지메 쇼이치 글·고마쓰 신야 그림/고향옥 옮김, 달리, 2019.5.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곁책》, 《쉬운 말이 평화》,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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