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꽃

나는 말꽃이다 37 말맛



  모든 말은 삶자리에서 태어나기에, 더 낫거나 더 나쁜 말은 없습니다. 다 다른 자리에서 다르게 태어날 뿐입니다. 일본이 총칼을 앞세워 쳐들어오던 때에는 총칼로 사람을 억누르던 말씨가 들어와서 퍼지고 새로 태어났어요. 사람을 위아래로 가르면서 임금님이 중국글(한문)을 높이던 무렵에는 임금 곁에 있거나 임금을 따르던 벼슬아치는 중국글에 맞추어 새말을 자꾸 지었어요. 서로 미워하거나 괴롭히는 판이라면 미움말이나 막말이 자꾸 태어납니다. 서로 돌보거나 사랑하는 자리라면 돌봄말이나 사랑말이 새록새록 태어나고요. 어느 말을 마주하든 말맛을 헤아립니다. 거칠거나 막된 말을 쓰는 사람한테서는 이이가 여태 겪거나 보내야 하던 거칠거나 막된 나날하고 얽힌 숨결을 읽습니다. 곱거나 포근한 말을 쓰는 사람한테서는 이이가 이제껏 삶을 곱거나 포근히 달래면서 가꾼 숨빛을 읽습니다. 우리말에 ‘윽박·호통’이 있고 ‘자랑·뻐기다’가 있습니다. 이런 낱말은 이러한 말이 태어난 삶자리가 어떤 넋이었는가를 알려줍니다. ‘슬픔’은 슬픈 삶을 알려주지요. ‘기쁨’은 기쁜 삶을 알려줍니다. 이쁘장하게 보이는 말은 속마음 아닌 겉모습을 꾸미는 삶을 알려줍니다. 저는 어디에서나 푸르게 노래하는 숲을 말맛에 담고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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