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33 글붓
우리나라에서 깎는 글붓(연필·볼펜)이 아름답고 부드럽고 좋다고 말하는 분을 만난 일이 드뭅니다. 아니, 없다시피 합니다. “무슨 붓을 쓰든 어때? 스스로 즐겁게 그려야지.” 하고 말할 만합니다만, 이웃나라 글붓을 손에 쥐어 보고는 깜짝 놀라서 나라사랑(애국)에서 나라싫어(매국)로 돌아서는 분이 많습니다. 어린이가 쓰는 글붓에 그림을 이쁘장하게 넣을 줄은 알되, 정작 글붓이 글붓 노릇을 제대로 하는 길에는 마음을 아예 못 쓰다시피 하는 우리나라예요. 일본·독일·프랑스는 글붓을 제대로 깎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글붓을 제대로 못 깎는 나라는 참 많을 수 있어요. 글붓을 잘 깎되 굳이 이웃나라에 안 팔고 제 나라에서만 돌리는 곳도 많겠지요. 모름지기 참나라·사랑나라·빛나라가 되려면 여느 살림살이부터 건사해야 합니다. 싸움날개(전투기)나 싸움수레(탱크)나 싸움배(군함)나 싸울아비(군부대)가 아닌, 수수한 살림길에 마음을 들여야지요. 글붓 한 자루를 놀리면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가 샘솟습니다. 글붓 두 자루를 사각이면 숲에서 살림짓는 슬기가 피어납니다. 싸움날개나 싸움수레나 싸움배나 싸울아비로는 뭘 낳을까요? 미움·다툼·슬픔·멍울·죽음만 낳지 않나요? 글붓을 고이 깎을 줄 알아야 보금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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