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9 가리지 않는다



  제가 가리는 책은 딱히 없습니다. 재미없거나 따분하다 싶은 책조차 읽습니다. 안 좋아하거나 안 즐기는 책이란 없습니다. 이 버릇은 푸름이(청소년)로 살던 열일곱 살부터 들였어요. 제가 안 좋아해도 배움수렁(입시지옥)에서는 외워야 하거든요. 푸른배움터를 마치고 말옮김이(통역사) 길을 배우던 열아홉 살에도 모든 책이며 글을 읽어야 했어요. 바깥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라면, 모든 삶·살림·사람을 알거나 헤아려야 하거든요. 저한테 믿음(종교)이 없어도 믿음책(경전)을 읽어서 믿음이(종교인) 생각을 알아야 합니다. 말옮김이를 배우다 그만두고서 말꽃짓기(사전집필)로 접어든 때가 스무 살인데, 낱말책을 엮으려고 할 적에도 “우리가 쓰는 말은 모든 곳에 걸쳐 다 다른 삶·살림·사람을 나타내는 터”라 어느 책이건 안 가리고 읽을 노릇입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글님이 없이 다 읽지요. 모든 갈래를 아울러야 하고, 그 갈래에서 일하는 사람 못지않게, 때로는 더 깊이 파면서 속내나 뒷모습까지 읽어야 비로소 낱말풀이를 하고 보기글을 붙일 수 있어요. 이런 버릇으로 살며 아이를 낳아 돌보자니 홀가분하더군요. 아이는 모든 놀이를 바라고, 모든 사랑을 바라보거든요. 다 만지고 듣고 하고 누리고 싶은 아이는 길잡이입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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