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4 남성 위안부



  스스로 살아내거나 겪거나 치르지 않거나, 코앞에서 마주하지 않거나, 이웃이나 동무한테서 만나지 않는다면, 참으로 모르는구나 싶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둘레에서 이런 모습을 흔히 마주합니다. 김규항이라는 글꾼이 “부유한 위안부도, 남성 위안부도 없다” 하고 글을 쓰기에, 이분은 모르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보았습니다. 모른대서 그이가 잘못이거나 나쁠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위안부’뿐 아니라 ‘노리개’가 무엇인지 알 턱이 없고, 알려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제가 사내 아닌 가시내였다면 다른 길을 살거나 겪었을 텐데, 사내라는 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여러 길을 마주하거나 겪거나 맞닥뜨리거나 견디어야 했습니다. 글꾼 ㄱ씨는 왜 “부유한 위안부도, 남성 위안부도 없다” 하고 읊을까요? 스스로 본 적도 겪은 적도 없을 테니까요. 스스로 본 적도 겪은 적도 없으니 ‘없다!’고 다부지게 읊을 텐데, 글이든 말이든 스스로 살아낸 대로 옮길 노릇입니다. 보지도 겪지도 하지도 않은 일은 안 써야지요. 책으로 읽어서는 한 줌조차 안 됩니다. 삶은 책이 아닙니다. 책은 삶 가운데 아주 부스러기 같은 토막만 담습니다. 말하기 앞서 살아 보셔요. 글쓰기 앞서 삶을 지으셔요. 살지도 겪지도 않았으면 입다무셔요.


http://www.gyuhang.net/3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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