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22 손빨래



  셈틀이나 손전화를 켜고서 글을 읽더라도 손을 씁니다. 종이책 아닌 누리책을 읽더라도 손으로 슥슥 넘깁니다. 무엇을 읽든 눈뿐 아니라 손을 쓰고, 몸이며 팔다리를 나란히 씁니다. 스무 살을 지나면서 홀로살기(자취)를 할 적부터 손빨래입니다. 빨래틀을 건사하지 않았습니다. 스물여섯 달을 지낸 강원 양구 멧골짝 쌈자리(군대)에서는 겨울에 얼음을 깨고서 손빨래였어요. 새뜸나름이로 일할 적에 날마다 땀에 젖은 옷을 빨래하는데 겨울나기란 만만찮아요. 한겨울에도 찬물로 빨래하거든요. 2003년에 이르러 비로소 더운물로 빨래할 수 있는 살림집을 얻었으나, 꼭 한 해뿐이고, 2008년에 큰아이를 낳고부터 비로소 더운물빨래를 했어요. 요새도 빨래틀(세탁기)은 잘 안 써요. 집에 두긴 했지만 으레 빨래그릇에 담가서 손으로 복복 비비고 헹구고 짭니다. 손으로 옷가지를 주무르면 ‘이 옷을 입으며 어떻게 지냈나’ 하는 이야기가 손을 거쳐 온몸으로 퍼져요. 종이책도 이와 같으니, 종이책을 쥘 적마다 ‘이 책을 짓고 엮고 다룬 이웃 살림이 손을 거쳐 온마음으로 번집’니다. 손을 뻗어 바람을 만지면 바람에 묻어나는 온누리 이야기를, 손을 들어 별빛을 쓰다듬으면 별이 우리 둘레를 돌며 들려주는 별나라 노래를 새록새록 읽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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