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시간 -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조국 지음 / 한길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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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1.6.22.

책으로 삶읽기 690


《조국의 시간》

 조국

 한길사

 2021.5.31.



《조국의 시간》(조국, 한길사, 2021)을 조용히 읽어 보았다. 글님 이야기로 바깥이 시끌시끌한 듯하지만,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나 그러할 뿐, 시골에서 글님 이야기를 할 일이 없고, 할 사람도 없다. 오뉴월로 접어든 이즈음 시골은 아주 바쁜 일거리는 어느 만큼 마무르는데, 달개비꽃이 파랗게 올라온다. 오동꽃도 눈부시다. 오디가 조금씩 저물지만, 까마중잎이 새롭게 오른다.


이른봄에는 풀벌레가 소리쟁이를 훑으려고 달려든다면, 이른여름에는 풀벌레가 까마중을 갉으려고 달라붙는다. 풀벌레가 좋아하는 풀은 사람한테도 이바지한다. 뽕잎도 취잎도 풀벌레가 얼마나 잘 먹는지 모르고, 모싯잎도 풀벌레가 매우 좋아한다. 풀꽃나무하고 풀벌레하고 풀살림을 서울이며 큰고장에서 왁자지껄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이 나라는 아름길을 가리라 본다.


벼슬이나 감투를 얻은 이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스스로 좁은 울타리에 갇혀서 종이꾸러미만 들여다보거나 셈틀맡에 앉아서 한숨을 쉬거나 하소연을 하는가? 아니면 그들 이름값·힘값·돈값을 고스란히 내려놓고서 맨몸으로 심부름꾼 노릇을 하겠다면서 소매를 걷어붙이는가?


책으로 갈무리한 이야기라면 모든 바깥소리를 끄고서 오롯이 책을 바라보면서 ‘글님이 글줄에 숨기거나 언뜻 비친 마음’을 우리가 스스로 읽으면 된다. 누가 쓴 어느 책을 읽든 그저 속내를 읽으면 된다. 글님 목소리만 읽는다면 님바라기(우상숭배)가 된다.


《조국의 시간》을 읽는 내내 “나와 내 가족이 아프고 힘들다”는 목소리가 줄잇는다. “나와 내 가족을 아프고 힘들게 하는 검찰·언론·야당이 나쁘다”고 하는 목소리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알쏭하다. 검찰·언론·야당이 하는 일이란 지켜보기·지청구(권력감시·권력견제)이다. 민주당이 야당일 적에 하던 일을 오늘날 야당인 곳에서 할 뿐이요, 글님을 비롯한 민주당은 “오늘날 이곳에서 권력자·지배자인 줄 잊은” 듯하다. 누구라도 ‘권력자·지배자’ 자리에 서면 샅샅이 파고들면서 잘잘못을 가리기 마련이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지켜보기·지청구(권력감시·권력견제)’를 할 수 있겠는가?


곰곰이 보니 글님은 타고나기를 ‘권력자·지배자’ 자리였고, ‘서민·시민·국민·백성·민중·민초·대중’ 같은 이름인 자리에는 하루조차 선 적이 없구나 싶다. 언제나 위에 서서 부리거나 내려다보는 길만 걸은 탓에, 맨몸으로 비바람을 맞이하면서 흙을 짓고 살림을 돌보고 아이를 사랑하는 집에서 살아 본 적도 없구나 싶다.


꼭 모든 사람이 배를 곯아 보거나 가난해 보아야 하지는 않다만, 감투나 벼슬을 얻는 자리, 더구나 높직한 감투나 벼슬을 얻는 자리에 서는 이라면, “가난한 사람(저소득층·빈민층)으로 살아 보기”를 적어도 석 달은 해봐야지 싶다. 자가용 아닌 두 다리하고 대중교통(이 가운데 지옥철)으로 일터를 오가고, 반지하 아닌 지하 삯집이나 하늘집(옥탑)에서 한겨울과 한여름을 지내 보고서야 감투나 벼슬을 받아야지 싶다.


또한 여름가을에 들일을 해봐야겠지. 낫으로 풀을 베고 나락을 거두어 보지 않고서야 벼슬아치가 삶을 알 수 있을까? 맨손으로 아기 똥오줌기저귀를 갈고서 자장노래를 부르고 젖떼기밥을 먹여 보지 않고서 살림을 알 수 있을까?


힘꾼(권력자·지배자)이기에 검찰·언론·야당을 탓하겠지. 수수한 사람들은 검찰·언론·야당을 탓할 일이 없다. 검찰·언론·야당 등쌀이 싫다면 감투와 벼슬뿐 아니라 돈·이름·힘을 모조리 내려놓고서 시골에 조용히 깃들어 흙살림을 하기를 빈다. “있는 사람”이 서울을 떠나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 모든 개혁은 저절로 차근차근 이룬다.


ㅅㄴㄹ


2019년 8월 9일 법무부장관으로 지명된 후 저와 제 가족은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졌습니다. 검찰·언론·야당은 합작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위한 조리돌림과 멍석말이를 시작했습니다. 검찰이 정보를 흘리면 언론은 이를 기초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야당은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 저와 제 가족은 광장에서 목에 칼을 차고 무릎이 꿇린 채 처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5쪽)


검찰·언론·야당 카르텔에 비판적인 시민들은 ‘조빠’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 카르텔의 강변과 주장이 세상에 가득 찼습니다. 살수(殺手)들은 신이 났습니다. 도끼를 내리쳤고, 칼을 휘둘렀습니다. 활을 쏘고 창을 던졌습니다.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갈 때마다 쌍욕과 조롱을 들어야 했습니다. (6쪽)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친애하는 벗과 동지들의 권유였습니다. 추후 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2019년 8월 9일 이후 벌어진 사태의 정리가 필요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 했습니다. 저와 제 가족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책을 발간하는 것은 부담이지만, 검찰·언론·야당의 주장만이 압도적으로 전파되어 있기에 더 늦기 전에 최소한의 해명은 해야 했습니다. (7쪽)


찔리고 베이고 부러진 상처가 너무 깊어 아무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면은 더욱 단단해지리라 믿고 희망합니다. 이 고통의 시간이 어떻게 마무리되건, 그 뒤에도 인간으로서의 삶, 시민으로서의 삶은 계속될 것입니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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