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6.20.

숨은책 482


《中等 平面幾何學 上卷》

 편집부 엮음

 진주프린트사

 1946.10.20.



  어릴 적에는 흰종이 구경이 어려웠습니다. 흰종이는 배움터에서 그림을 그린다고 할 적에 글살림집(문방구)에 가서 한 자락에 20원을 치르고 샀어요. 1982년에 어린이는 버스를 타며 60원을 치렀습니다. 하얀 그림종이 한 자락에 20원이란 만만하지 않은 값입니다. 이와 달리 누런종이(갱지)는 20원이면 스무 자락을 사지요. 그렇다고 누런종이를 마음껏 쓰지는 못해요. 다 돈이거든요. 딱종이(딱지)를 접을 종이조차 모자라고, 배움터에서는 다달리 마병모으기(폐품수거)를 시키니, 늘 종이 한 쪽이 아쉬운 나날이었습니다. 우리 종이살림은 1990년으로 접어들며 나아졌지 싶은데, 총칼굴레(식민지)에서 갓 풀린 1946년이라면 종이가 얼마나 아쉬웠을까요? 《中等 平面幾何學 上卷》은 경남 진주에 있던 ‘진주프린트사’에서 쇠붓(철필)으로 그려서 찍은 배움책인데, 겉종이는 미군이 쓰던 길그림(지도)을 잘라서 댔어요. 안쪽에 ‘U.S.Navy Hydrography’ ‘From Netherlands Government charts to 1941’ 같은 글씨가 고스란히 있습니다. 미군은 길그림을 아무렇지 않게 버렸을까요. 한글이 아닌 다른 글씨요, 종이가 두껍고 좋으니 이 나라 어린이·푸름이를 가르치는 책에 쓸 종이로 삼자고 여겼을까요. 배우려는 마음은 언제나 대단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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