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2021.4.20.

숨은책 519


《풀종다리의 노래》

 손석희 글

 역사비평사

 1993.11.20.



  1993년을 견뎠습니다. 새벽 다섯 시 삼십오 분에 첫 버스로 배움터에 갔고, 밤 열한 시 십오 분 막차를 놓치면 집까지 두 시간 남짓 걸었습니다. 막차를 놓쳤대서 투덜대지 않았어요. 거리불빛에 기대어 책을 읽었어요. 배움책으로 가득한 등짐이지만 여느 책을 늘 대여섯 가지씩 챙겼어요. 어린배움터 길잡이로 일하는 아버지는 집에서 쉴 때면 보임틀(텔레비전)을 매우 크게 틀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서 “난 앞으로 보임틀을 집에 안 두겠어!” 하고 다짐합니다. 열린배움터로 갔으나 스스로 배운다거나 책을 곁에 두는 동무나 윗내기를 못 만납니다. 다들 보임틀에 눈을 박습니다. 동아리 사람들이 크게 튼 보임틀이 못마땅해서 혼자 조용히 헌책집을 떠돕니다. 보임틀에 참목소리는 얼마나 있을까요? 책에는 참목소리가 얼마나 흐를까요? 우리 삶터는 허울을 쓰고 속내를 감춘다고 느꼈습니다. 헌책집에서 만난 책벗이 《풀종다리의 노래》가 좋다고 하기에 들췄으나 시큰둥했어요. 그 뒤 손석희 님이 큰집을 덜컥 장만하든, 중앙일보 종편으로 가든, 박진성 시인한테 안 뉘우치든, 조주빈하고 엮이든 그러려니 싶어요. 풀종다리 노래를 하자면 스스로 들풀이 될 노릇입니다. 두 다리로 골목을 걷고 맨발로 풀밭을 디뎌야겠지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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