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2 믿음길
예전에는 철(학기)이 바뀌면 길잡이(교사)가 아이들더러 손을 들라 하면서 물었어요. “집에 텔레비전 있는 사람?”이나 “고기를 한 달에 몇 날 먹나?”나 “어머니만 있는 사람? 아버지만 있는 사람? 둘 다 없는 사람?”도 묻는데 “아버지하고 얼마나 얘기하나? 하루 한 시간? 한 주 한 시간? 한 달 한 시간? 한 해 한 시간?”도 묻고, 그야말로 아이들 마음에 멍울이 질 만한 얘기를 서슴지 않고 물으며 손을 들어서 셌으니 더없이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막짓(학교폭력)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합니다. “무슨 종교를 믿나?” 하고도 묻는데, 우리 집은 아무런 절(예배당)을 안 다니기에 ‘무교’라 했다가 ‘유교’라고도 장난을 하고, 어느 때부터인가는 “나는 나를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꿀밤을 먹었어요. 이제 와 돌아보면 ‘책을 얼마나 읽느냐?’라든지 ‘어떤 나무나 꽃을 좋아하느냐?’라든지 ‘어떤 새랑 노느냐?’라든지 ‘어떤 바람이나 구름을 아느냐?’ 하고 물은 적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무엇을 묻고 가르치며 길들일 셈속일까요? 모든 거룩책(경전)은 어른이 씁니다만, 어린이더러 ‘믿음책’을 쓰라고 한다면 덧없는 틀이나 굴레란 하나도 없이 오직 한 마디 ‘사랑’만 적지 않을까요? 스스로 믿고 가꾸려고 읽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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