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516
《少女百面相》
佐々木邦 글
大日本雄辯會講談社
1933.10.20./1936.3.25.14벌
때랑 곳을 가리지 않고 읽습니다. 갓 나온 책도 해묵은 책도 읽습니다.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로 가거나, 시외버스를 타고 큰고장에 가거나, 큰고장에서 전철을 타거나, 그냥 길을 적에도 읽습니다. 밥을 짓다가 설거지까지 마치고 손이 비면 물을 닦고서 몇 줄이나 몇 쪽을 슥 읽습니다. 아기를 업고 어르면서도, 자장자장 노래를 부르고 토닥이면서도 읽었어요. 읽을 적에는 그저 읽을 뿐, 글쓴이나 펴낸곳 이름은 안 봅니다. 이야기에 흐르는 마음만 헤아립니다. 해묵다 못해 낡고 빛바랜 《少女百面相》을 처음 만나던 때에는 ‘어떤 책이기에 이렇게 낡고 닳도록 오늘까지 살아왔을까’ 궁금했습니다. 책자취를 보니 1933년에 처음 찍고 1936년에 열넉 벌을 찍었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꽤 오랫동안 엄청 사랑받은 책이라더군요. 우리나라에는 이 책이 언제 처음 들어왔을까요? 일본사람 아닌 한겨레가 이 책을 장만해서 읽었지 싶어요. 책 안쪽에 “이 冊은 大端히 재미있읍니다” 하고 한글로 적었어요. 책 곳곳에 한글·한자·일본글을 섞은 적바림이 있습니다. 아마 1936년 언저리에 이 땅 어느 고장 어느 분이 ‘재미있게’ 읽었을 텐데요, 일본말을 쓰고 일본살림을 배우며 먹고살아야 하던 손길이 귀퉁이에 남은 셈입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