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1.1.21.
《슬램덩크 30》
이노우에 타케히코/소년챔프 편집부 옮김, 대원, 1996.8.22.
열여섯 살이던 무렵 그림꽃 《슬램덩크》를 처음 만났다. 동무들은 이 그림꽃을 몰래 배움터에 가져와서 들췄고, 우르르 몰려서 보다가 걸려서 빼앗기면 눈물바람이었다. 인천은 툭하면 꼴찌를 하는 삼미·청보에 이은 태평양이 안마당인 공치기가 사랑받았지만, 배움터에서는 그림꽃 하나가 불씨를 지피며 어느새 공넣기가 푸름이한테 가장 사랑받았다. 그림꽃을 걸핏하면 빼앗기던 동무들은 푼푼이 모아 농구공에 농구신을 장만한다. 잘사는 집이라면 어버이가 바로 사주지만, 가난한 집이라면 몇 달치 소꿉돈을 모아 비로소 장만하고는 마치 아기를 안듯 다루더라. 한 판을 40분에 마치는데 그림꽃은 끝없이 이어졌다. 이러다가 푸른배움터를 모두 마치고, 인천을 떠났고, 군대에 가면서 까무룩 잊었다. 한참 잊던 그림꽃인데 아는 분 집에 놀러갔다가 책시렁에 정갈히 꽂힌 《슬램덩크》가 있기에 푸른배움터를 마칠 즈음부터 못 본 데부터 넘겼다. 그렇구나, 이렇게 흘러서 이렇게 끝났구나. 다만 이때에는 이 그림꽃이 미국 프로농구를 고스란히 따온 줄 알던 무렵이요, 그림 하나마다 누구를 어떻게 옮겨그렸는지 알아차렸다. 나라도 ‘찢어지도록 아픈 등’을 무릅쓰고서 그자리에 섰겠지. 불꽃은 피워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삶이니까.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