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떠오르는 길 (2020.11.18.)
― 인천 〈책방산책〉
우리나라에서 “뜨내기 고장”이란 이름을 듣는 인천입니다. 저는 이 인천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아버지하고 할아버지도 인천에서 어린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할할아버지나 할할할아버지 이야기는 듣지 못해서 모르겠는데, 어쩌면 저는 인천이란 데에서 되게 뿌리가 깊은, 이 고장에서 참 오래 살던 집안에서 태어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숱한 인천 동무처럼 인천을 떠났습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다음 그대로 뿌리내리는 동무도 많지만, 이에 못지않게 떠나는 걸음이 많아요.
오늘날 이 나라를 보면 모든 시골은 어린이·푸름이·젊은이가 아주 빠르게 제 텃고장을 뜹니다. 작은고장도 더 커다란 곳으로 떠나기 일쑤예요. 그런데 인천이야말로 예나 이제나 가장 크게 떠요. 웬만한 일자리가 서울에 있으니 서울로 뜹니다. 조금만 똑똑하면 “넌 똑똑한데 서울로 왜 못 가니?”란 잔소리를 끝없이 듣고, 안 똑똑하면 “넌 서울도 못 갈 만큼 안 똑똑하구나?”란 핀잔을 내내 들어요.
이제는 좀 다를까요? 이제는 인천사람 스스로 이 고장을 미워하거나 싫어하거나 꺼려서 어린이·푸름이·젊은이를 내보내는 짓을 멈출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2010년에 다시금 인천을 떠나 전남 고흥에 깃들며 제가 ‘인천 남구(미추홀구)’에서 태어난 줄 까맣게 잊었다가, 미추홀구청에서 ‘미추홀구 골목 이야기’를 글하고 빛꽃으로 엮어 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새삼스레 어릴 적 일이 떠오르더군요. 1975년부터 1995년까지 끝없이 걷고 다시 걷던 날이 생각났어요. 예전에 저는 함씽씽이(버스)조차 거의 안 탔어요. 한두 시간쯤 그냥 걸으면서 책을 읽었어요. 길삯을 아껴 배다리 헌책집에서 이 돈으로 책을 사읽었습니다. 동무네 집에 놀러가려고 한두 시간을 걸었고, 다시 우리 집으로 한두 시간을 걸었어요.
경인교대 옆에 있는 〈책방산책〉으로 걸어갑니다. 밤길을 걷다가 ‘아, 경인교대! 사범학교를 나오느라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멍울을 씻으려고 우리 아버지가 예순을 앞둔 나이에 교장 샘이면서 대학원을 꼭두(수석)로 마친 그곳이네!’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교대 옆으로 골목골목을 지나면 야트막한 오르막을 지나 포근한 자리에 마을책집이 있습니다. 밤빛을 누리며 걸어도 아늑하니, 낮빛을 즐기며 걸으면 훨씬 고울 길이겠구나 싶어요. 책집 이름처럼 ‘마실’을 가면 되어요. 사뿐히 걸으면 됩니다. 마을에서 이웃을 만나고 동무를 사귀고, 골목나무랑 골목새랑 골목꽃을 마주하면 돼요. 책집 앞뜰에 놓은 걸상에 앉아 땀을 들인 다음 느긋하게 여러 갈래 책을 읽으면 하루가 알찰 테지요.
책으로 가는 길은 나들이입니다. 책을 만나는 집은 이웃입니다. 책으로 읽는 삶은 바로 우리 스스로 사랑하는 숨결을 가꾸는 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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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돌밭》(최정, 한티재, 2019.11.11.)
《단어의 발견》(차병직, 낮은산, 2018.9.28.)
《동시마중》 64호(송선미 엮음, 동시마중, 2020.11.1.)
《모래요정과 다섯 아이들》(에디스 네즈빗 글·H.R.밀라 그림/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2006.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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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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