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어린이하고 동무하려는 어른으로 (2020.11.11.)

― 순천 〈도그책방〉



  순천 ‘그림책도서관’ 옆에 있던 〈도그책방〉이 ‘그림책도서관’ 코앞에 새 가게를 엽니다. 이제 “옆책집”하고 “앞책집”이 나란히 있는 셈이요, 그림책빛이 한결 싱그러이 퍼지는 길머리가 되는구나 싶습니다. 11월 11일에 해오름잔치를 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모저모 바쁜 일거리를 11월 10일까지 얼추 매듭을 짓습니다. 그렇다고 그 일감이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하루를 느긋이 보낼 만한 틈은 마련했습니다. 새벽처럼 일어나 동트는 하늘을 바라보며 마당을 콩콩 달리며 노는 작은아이한테 “보라 씨는 오늘 어떤 하루를 그리니?” 하고 묻습니다. “아버지는 순천에 다녀오려 하는데, 너는 어떠니?” 하고 덧붙입니다. “으, 음, 그러면 같이 갈래요.”


  집안일을 갈무리하고 빨래를 살피고는 11시 시골씽씽이(군내버스)로 읍내로 나갑니다. 순천으로 가는 씽씽이를 기다립니다. 순천에서 우체국에 들러 글월을 부치고, 작은아이 낮밥을 먹이며 해바라기를 합니다. 이제 천천히 걸어 〈도그책방〉에 닿습니다. 책집에 닿기까지 길에서 3시간을 보내는데, 순천에서 지내는 이웃님이라면 가벼운 차림새로 살랑살랑 걸어서 드나들 만하겠지요. 마을책집이란 마을에서 언제라도 바람결처럼 가벼이 찾아들면서 책빛을 누리는 터이니까요.


  앉을자리가 널찍한 이곳에서 다리를 쉬다가, 볕이 잘 드는 코앞 그림책도서관 잔디밭을 걷다가, 다시 그림책 한 자락을 손에 쥐다가, 새삼스레 붓을 쥐고 쪽글 한 꼭지를 쓸 만하지 싶습니다. 글이란 쫓기는 마음으로는 못 씁니다. 마감이 있더라도 마감이 아니라 ‘글을 짓는 우리 숨빛’하고 ‘글을 기다리는 이웃 눈빛’을 바라보기에 써내는 글입니다. 마감이 빠듯하더라도 마감이 아닌 ‘그림을 그리는 우리 숨결’하고 ‘그림을 기다리는 이웃 눈망울’을 헤아리기에 그리는 그림이에요.


  멋을 부리기에 멋나는 그림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사랑으로 녹이는 살림님 손길로 포근하게 숲을 돌보는 푸른 눈빛이 되기에 어린이랑 동무하면서 나누는 그림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즈막에는 ‘어른끼리 나누려는 그림책’이 꽤 자주 나오고, 어른끼리 나누려는 그림책을 어린이한테 읽히는 분도 많습니다만, 앞으로는 ‘어린이하고 동무하려는 그림책’으로 거듭나면 좋겠어요. 바바라 쿠니 님도, 엘사 베스코브 님도, 윌리엄 스타이그 님도, 이와사키 치히로 님도, 가브리엘 벵상 님도, 언제나 어린이하고 동무하는 상냥하면서 슬기로운 숲마음 어른이었지 싶습니다. 이분들 그림책에는 늘 숲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요.


  작은아이가 “아버지 집에 언제 가요?” 하고 자꾸 묻습니다. 그래, 집으로 돌아가야지. 다시 3시간을 들여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에 닿으니 별이 쏟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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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이라면》(쥬제 죠르즈 레트리아 글·안드레 레트리아 그림/임은숙 옮김, 국민서관, 2012.11.26.)

《황새 봉순이》(김황 글·사이다 그림, 킨더랜드, 20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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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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