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나무한테 곁을 두는 눈빛 (2020.10.10.)

― 서울 〈나무 곁에 서서〉


  부산, 파주, 서울, 이렇게 다른 고장에서 하룻밤씩 묵은 시월 첫머리 아침입니다. 밝게 퍼지는 햇빛을 받으면서 일어나 하루를 그립니다. 그동안 장만한 책을 자리에 죽 펼쳐서 짐을 새로 여밉니다. 등짐이 되도록 덜 무겁도록 추스르지만 사흘을 바깥에서 묵으며 장만한 책이 꽤 많습니다.


  시골집에서는 멧새가 노래하며 새벽을 알린다면, 큰고장에서는 자동차가 붕붕거리며 아침을 알립니다. 시골집에서는 풀내음이랑 이슬로 날씨를 읽는다면, 큰고장에서는 아무래도 손따릉이나 보임틀을 켜서 날씨를 헤아리겠지요. 바람을 알려면 바람을 만나고, 바다를 알려면 바다를 만나고, 나무를 알려면 나무를 만날 노릇입니다. 이웃을 알려면 이웃을 만나고, 이웃나라를 알려면 이웃나라를 만나야겠지요.


  책으로만 사귄대서 알지 못해요. 숲책(환경책)을 곁에 두기에 숲을 알지 않아요. 다만, 숲책은 큰고장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숲한테 한 발짝 다가서려고 마음을 기울이는 눈빛이 되리라 봅니다. 숲책 한 자락은 큰고장하고 시골을 넘나들면서 푸르게 피어날 살림길을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징검돌 하나가 될 만하지 싶어요.


  아침빛을 누리면서 〈나무 곁에 서서〉로 찾아갑니다. 손따릉을 켜서 길그림을 살피는데 이쪽저쪽이 헷갈립니다. 시골에서라면 하늘이라든지 바람으로 길을 읽을 텐데, 서울에서는 영 종잡지 못하겠어요. 이리 가다가 저리 돌고서야 비로소 책집이 깃든 쪽을 알아차립니다.


  서울 하늬녘에 깃든 책집은 조촐합니다. 곁에는 꽤 우람하구나 싶은 지음터(공장)가 있었다 하고, 그곳 옆마당에는 나무도 우람합니다. 겹겹으로 올린 집이 높기에 하늘은 손바닥만큼도 안 되지만, 이 조그마한 틈으로도 구름빛이며 하늘빛을 헤아립니다.


  어느 분은 “숲책만 갖추고서 장사가 되요?” 하고 물을는지 몰라요. 저는 “오롯이 숲책으로 장사를 하는 마을이 되고 나라가 되면, 이 나라는 푸른나라·숲나라·아름나라로 나아갈 만하지요!” 하고 얘기하겠습니다.


  모든 밥은 숲에서 옵니다. 모든 옷이며 집도 숲에서 옵니다. 숲이 푸르기에 바다가 맑아요. 숲이 넘실대기네 서울도 서울스러웁니다. 숲이 아름드리로 자라기에 아이들은 느긋하게 뛰놀면서 참한 어른으로 빛나는 길을 가겠지요.


  나무 곁에 서서 나무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습니다. 나무 곁에 서서 나무가 꿈꾸는 사랑을 바라봅니다. 나무 곁에 서서 얼마나 많은 멧새랑 풀벌레랑 벌나비랑 숲짐승이 이곳으로 찾아들어 어우러지는가를 듬뿍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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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책을》(안토니오 벤투라 글·알레한드라 에스트라다 그림/김정하 옮김, 딸기책방, 2019.4.22.)

《사계절 곤충 탐구 수첩》(마루야마 무네토시 글·주에키 타로 그림/김항율 옮김, 동양북스, 2020.7.15.)

《내 이웃의 동물들에게 월세를 주세요》(마승애 글·안혜영 그림, 노란상상, 20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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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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