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직업 -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 마음산책 직업 시리즈
이은혜 지음 / 마음산책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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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책으로 삶읽기 636


읽는 직업》

 이은혜

 마음산책

 2020.9.25.



글을 쓰는 동안 여명을 자주 봤다. 맑은 정신으로 글을 쓰려고 동트기 전 집을 나설 때면 늘 어스름한 하늘 아래서 집 앞에 놓인 파란 쓰레기봉투를 치워주던 키 큰 청년과 마주쳤다. (10쪽)


하지만 출판 시장의 상황에 따라, 혹은 자기 욕망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관계가 삐걱거릴 계기는 도처에 널려 있다. 노년에 이른 작가의 문제의식이 치밀해질수록 글은 더 빽빽해지기 마련이고,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청년과 중년의 독자들을 모두 뒷걸음질치게 만든다. 청년은 아직 그와 공유할 만한 세계가 별로 없는 반면 중년에 이른 독자들은 그나마 그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정치적·역사적 이슈에서 양자 사이의 틈은 점점 더 벌어져갔다. (22쪽)


지성, 전문성, 근면성, 인내심을 갖춘 팩트체커들은 실제로 만나면 얼음처럼 차가울 것 같지만 오히려 유연하고 이해심이 많아 놀라움을 자아낸다. 왜 그럴까. 타인의 오류를 지적할 때면 상대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부드러워야 하며, 또 인간이라면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 오만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2쪽)



책이름부터 누가 썼는지 알 만한 《읽는 직업》(이은혜, 마음산책, 2020)을 읽었다. 나는 ‘쓰는 일’을 하지만, ‘쓰는 일’을 하자면 ‘읽는 일’을 무섭도록 해야 한다. 읽지 않고서는 쓰지 못한다. 거꾸로, ‘읽는 일’을 하자면 어찌해야 할까? 아주 쉽다. ‘읽는 일’을 하자면 ‘쓰는 일’을 해야 한다. 《읽는 직업》을 쓴 분은 이 책을 쓰기 앞서까지 ‘쓰는 일’을 얼마나 해봤을까? ‘했을까’가 아닌 ‘해봤을까’이다. ‘읽는 일’이란 거의 일터에 나가서 하지만, ‘쓰는 일’은 여러 갈래인데, 집에서 하거나 길에서 한다. 숲에서 하거나 서울에서 한다. 자다가도 하거나 아기를 돌보면서 한다. 똥기저귀를 빨고 아기를 씻기다가 하며, 밥을 지어 차려놓고서 후다닥 쓰기도 한다.


아무래도 ‘읽는 일’만 하는 사람은 ‘쓰는 일’을 아예 모른다고도 할 만하다. ‘쓰는 일’을 하자면 아이들 자장노래를 몇 시간을 부르고 토닥이느라 손에 붓을 못 쥔다. ‘쓰는 일’을 하자면 마감이 닥친 글이 있어도 아이들을 달림이(자전거)에 태워 바람을 쏘이고 같이 놀아야 한다. ‘쓰는 일’을 하자면 나무를 타고 열매도 따고, 밭자락을 돌보며 나물을 훑고, 설거지에 비질에 하루가 더없이 길다. 그러나 ‘쓰는 일’을 하기에 구름빛하고 별빛을 고루 누린다. ‘쓰는 일’을 하기에 구태여 서울에 안 살고 시골에 고즈넉히 깃들 만하다. ‘쓰는 일’을 하기에 하루 내내 밥을 안 먹고서 오롯이 마음을 불태워 새 이야기를 짓곤 한다.


새삼스럽지만 “노년에 이른 작가”는 나이만 먹지 않는다. 두 갈래이다. 한켠은 나이·이름·돈·힘을 먹으면서 고리타분하다면, 다른켠은 살림·사랑·삶·슬기를 먹으면서 짙푸르면서 새롭다. 젊은이라 해서 안 슬기롭지 않고, 젊다 해서 사랑을 모르지 않다. ‘읽는 일’만으로는 이 길을 헤아리지 못하니, 적잖은 출판사 엮음이는 ‘속글 아닌 겉글’을 훑다고 그치곤 한다.


이래저래 ‘쓰는 일’을 모르기에 “팩트체커들은 실제로 만나면 얼음처럼 차가울 것 같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야 만다. 참(팩트체커)을 말하는 사람이 왜 차가울까? 참을 찾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차갑지 않은가? 참을 말하는 사람은 ‘거짓을 참으로 여기는 사람’을 가르칠 마음이 없다. 그저 스스로 참을 알고 참답게 살아가고 싶기에 참을 찾을 뿐이요, 애써 찾아낸 참을 혼자만 알 까닭이 없다고 여겨 누구나 알도록 열어 놓는다. ‘쓰는 일’을 하는 사람은 삶길에서 찾아낸 참빛을 그저 스스로 누리다가 혼자만 건사할 뜻이 없기에 누구라도 읽도록 풀어낸다. 그리고 풀꽃나무를 읽고, 구름별을 읽으며, 눈비바람을 읽는다. 《읽는 직업》을 쓴 분은 엮음이로 열다섯 해를 살았다는데, 이 책을 쓴 이해가 ‘참다운 엮음이로 첫발을’ 디딘 셈이지 싶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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