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고양이 더하기 책 (2020.10.23.)

― 서울 〈산책자〉


  어제 서울에 부랴부랴 와서 자전거를 고쳤고, 아침에 이 자전거로 강아랫마을 버스나루로 달릴 생각입니다. 이에 앞서 서울 마을책집을 더 들르고 싶어서 〈산책자〉로 갑니다. 합정역 곁에 있는 이곳은 3층에 있군요. 자전거를 어찌할까 망설이다가 디딤돌을 따라 죽죽 올라갑니다. 책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다른 자전거가 하나 있군요. 이 자전거 옆에 제 자전거를 나란히 놓고 들어섭니다.


  서울에서 하루를 묵은 터라 한낮에 마을책집에 찾아갔습니다. 토실한 집고양이가 저를 쳐다봅니다. “책 보러 왔어. 네가 이곳을 지키니?” 토실냥이는 책을 보러 왔다는 제 다리 사이를 끝없이 오가면서 목덜미를 긁어 달라고 합니다. 토실냥이를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넌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늘 이렇게 안기니?” 하고 묻지만, 이 아이는 제가 목덜미를 긁지 않으면 안 떠날 낌새입니다.


  토실냥이 목덜미를 긁어 주니 가르랑거리다가 책상으로 펄쩍 뛰어오르더니 벌러덩 눕습니다. “글쎄, 난 너랑 놀려고 오지 않았어. 책을 보러 왔다니까.” 목덜미는 긁어 주거나 배는 긁어 주지 않아서인지 토라진 듯하지만, 그래도 내내 제 곁에 붙어서 “넌 뭔 책을 그리 보니? 어제도 책을 봤잖아? 이제 그만 보지? 너희 집에도 책 많다며?” 하며 자꾸 치근덕치근덕 붙습니다. 문득 앞을 보니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깜고양이가 이 모습을 멀뚱히 쳐다보다가 흠칫 놀랍니다. 깜고양이는 “너희 노는 꼴을 구경하지 않았어. 쳇.” 하면서 골마루 나무디딤턱으로 갑니다.


  한참 책시렁을 살피는데 사람은 없구나 싶습니다. 가만히 보니 이곳은 ‘말과 활’이란 잡지를 펴내는 곳에서 꾸리는 책집이기도 하며, ‘산책자 + 숨어있는 책’이란 이름으로, 헌책집 책시렁에서 옮긴 책을 두는 칸이 있구나 싶어요. 책을 집어서 뒤쪽을 봅니다. “아, 〈숨어있는 책〉 지기님이 슥슥 적은 책값 자국이로구나.” 푸름이일 적에 인천 마을책집을 돌며 찾아내어 읽은 최인훈 님 책을 새삼스레 장만합니다. 1991년 그때 동무는 “야, 이렇게 낡은 책을 굳이 찾아내어 읽어야 하니?” 하고 물었어요. “최인훈인걸. 고작 스무 해도 안 지났는데 낡은 책 아냐.” 그런데 2020년에 새로 읽으니 어쩐지 낡아 보여 꽤 슬펐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저는 늘 ‘낡은’ 책에서 ‘낡지 않은 새빛’을 찾고 싶었고, ‘오늘’ 책에서는 ‘오래된 길에 흐르는 빛’을 헤아리고 싶었어요. 그나저나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 함씽씽이(버스)에서 무릎셈틀을 켜는데, 〈산책자〉에서 찍은 사진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제가 책만 보고 저희랑 안 놀았다고, 두 고양이가 마음힘으로 사진을 없앴을까요? 아마 그러했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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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와 想像力》(최인훈, 민음사, 1976.11.15.)

《崔仁勳全集 2 灰色人》(최인훈, 문학과지성사, 1977.8.20.)

《作家論叢書 10 李箱》(김용직 엮음, 문학과지성사, 1977.7.5./1995.9.20.)

《冠村隨筆》(이문구, 문학과지성사, 1977.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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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쓰고 “말꽃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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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손전화로도 사진을 몇 자락 찍었는데
손전화 사진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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