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풀꽃나무 읽는 봄치마 (2019.4.13.)
― 순천 〈골목책방 서성이다〉
겨울에는 겨울바람을 느끼면서 하루를 맞이합니다. 가을에는 가을볕을 누리면서 아침저녁을 보냅니다. 여름에는 여름비를 노래하면서 살림을 짓습니다. 봄에는 봄꽃 곁에서 춤을 추며 이날을 기립니다.
철마다 다르기에 철마다 새롭게 눈을 떠요. 날마다 다르기에 날그림이나 달그림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언제나 반가이 새날을 즐기자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어떤 꽃을 보았니? 오늘 맡은 꽃내음하고 어제 맡은 꽃내음은 어떻게 다르니?” 아이들한테 묻습니다. “오늘은 어느 새가 찾아왔니? 오늘 노래하는 새는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니? 어제 노래하던 새가 들려준 이야기하고 얼마나 다르니?” 아이들한테 자꾸자꾸 묻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둘레 어른한테 끝없이 묻는다지요. 우리 집 아이들도 어버이한테 끝없이 자꾸자꾸 묻습니다. 그리고 어버이인 저도 아이들한테 새록새록 물어봅니다. “오늘은 구름이 어떤 무늬이고 빛깔이니?” “오늘은 별빛이 어떻게 흐르니?” “오늘은 바람에 어떤 기운이 묻어나니?” “오늘은 흙빛이 얼마나 바뀌었니?” “오늘은 나비가 우리한테 무슨 말을 속삭이니?”
더하기나 곱셈을 잘해도 좋습니다. 배움끈이 길어도 좋습니다. 갖은 책을 잔뜩 읽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풀꽃나무를 상냥하게 읽어도 좋아요. 바람하고 수다를 떨면서 함께 놀 줄 알아도 좋습니다. 구름을 불러 동무로 삼아도 좋고요.
문득 볼일이 있어 순천으로 마실을 간 길에 〈골목책방 서성이다〉로 찾아갑니다. 슬슬 뜨끈뜨끈 바뀌는 볕바람을 느끼며 꽃치마를 두르고서 나들이를 합니다. 봄꽃이 가득한 봄날에는 저마다 꽃무늬 알록달록 눈부신 치마를 휘날리면서 거닐면 참으로 멋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소담스러운 꽃을 무늬로 새겨도 돼요. 나물꽃이며 들꽃을 무늬로 새겨도 되지요. 나무꽃이며 구름꽃을, 또 비꽃이며 눈꽃을 무늬로 새길 만합니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바람이 골목을 감돕니다. 천천히 거닐어 책집으로 찾아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 손을 잡고 찾아오는 어른이 있고, 어른 손을 잡고 찾아오는 아이가 있습니다. 책집에서 노래꽃 한 자락을 읽고, 이야기꽃 두 자락을 듣습니다. 이 모든 부드러운 기운을 두 손으로 모두어 낸다면, 우리 보금자리에는 살림꽃이 피어나겠지요.
책을 곁에 두는 사람들마다 봄빛이 흐드러지기를 빌어요. 책이 될 글을 알뜰살뜰 여미는 사람들한테 봄바람이 감돌기를 빌어요. 우리 모두 봄아이가 되고, 봄어른이 되며, 봄웃음으로 어우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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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여운 나를 위로하다》(박두규, 모악, 2018)
《서점의 일생》(야마시타 겐지/김승복 옮김, 유유, 2019)
《언니네 마당 11》(언니네마당,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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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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