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겪었으면 쓰지요 : 나는 몸소 겪지 않고 마음으로 보지 않은 삶을 한 줄은커녕 한 마디로도 못 쓴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몸소 겪었거나 마음으로 본 이야기이다. 읽지 않은 책이라면 느낌글을 쓸 수 없으니, 책느낌글은 모조리 읽은 책만 놓고서 쓴다. 그리고 한 벌만 읽고서 느낌글을 쓰지 않는다. 적어도 서너 벌은 읽고서야 그 책을 놓고서 느낌글을 쓰고, 아름책으로 여긴다면 열 벌 스무 벌 쉰 벌 거듭거듭 읽고서 느낌글을 쓰는데, 자꾸자꾸 새롭게 느낌글을 쓰고 싶더라. 겪지 않았다면 몸이며 마음에 스며든 이야기가 없으니 쓸 말이 없다. 겪었기에 몸이랑 마음으로 바라보고 헤아린 이야기가 수두룩하여 쓸 말이 많다. 밥을 안 지어 본 사람이 밥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사랑을 안 한 사람이 사랑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자전거를 안 탄 사람이 자전거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아이들 똥오줌기저귀나 곁님 핏기저귀를 손빨래로 정갈히 건사한 살림을 꾸려 보지 않고서 성평등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모두 그렇다. 겪기에, 하기에, 살아가기에 쓸 뿐이다. 어떤 글이든 꾸밀 까닭이 없다. 글을 왜 꾸미겠는가? 안 겪은 이야기를, 안 한 이야기를, 하나도 모르는 이야기를 억지로 쓰자니 겉멋에 허물좋은 꾸밈결로 쓰겠지. 2020.10.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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