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문학동네 시인선 146
김희준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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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50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

 김희준

 문학동네

 2020.9.10.



  낫으로 벤 풀은 곧 새로 돋습니다. 재미있어요. 석석 베는 손길 따라 풀이 삭삭 눕는데, 낫으로 풀을 벨 적에는 보드라우면서 향긋하게 푸른바람이 일렁입니다. 저는 자동차도 안 몰고 기계낫(예초기)도 안 씁니다만, 둘레에서 기계낫으로 풀밭을 쓸어버리면, 풀은 한동안 숨을 죽일 뿐 아니라 두려워 떨면서 더 악을 쓰면서 올라옵니다. 참말 그래요. 낫으로 풀을 베면 풀이 다시 올라오기까지 좀 더디지만 보드라운데, 기계낫을 쓰면 무시무시하게 악바리로 올라오려고 할 뿐더러, 냄새가 고약해요. 죽음냄새가 훅 퍼집니다. 《언니의 나라에선 누구도 시들지 않기 때문》을 읽는 내내 풀내음을 생각합니다. 가장 좋기로는 풀을 안 베고서 지켜보기입니다. 우리가 풀한테 속삭이면 되거든요. 풀은 풀대로 자라나야 할 뜻이 있어 자라는데 억지로 벨 까닭이 없어요. 다만 풀베기를 해야 한다면 먼저 풀하고 나긋나긋 마음을 나누고서 가만히 눕힐 노릇입니다. 풀밭은 그냥 풀밭이 아닌 풀벌레 보금자리요, 거미에 벌나비에 개미도 함께 사는 터예요. 사람만 바라본다면 풀빛을 모릅니다. 푸른별을 바라보기에 풀빛을 알 만하고, 시들지 않는 시를 쓸 수 있겠지요. ㅅㄴㄹ



비의 근육을 잡느라 하루를 다 썼네 손아귀를 쥘수록 속도가 빨라졌네 빗방울에 공백이 있다면 그것은 위태로운 숨일 것이네 속도의 폭력 앞에 나는 무자비했네 얻어맞은 이마가 간지러워 간헐적인 평화였다는 셈이지 (악수/13쪽)


어머니 엎드려보세요 세상은 내가 껴안을 수 없는 것으로 가득합니다 황금 나무가 꿀을 품고 천장까지 자랄 것입니다 가지를 타는 흰 뱀은 환생을 꾀하고 거북이는 백사장 가득 알을 낳겠지요 (태몽집/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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