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니스 7
오시미 슈조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깎아내린 사람은 바로 너야



《해피니스 7》

 오시미 슈조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20.3.25.



  남이 나를 깎아내리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남이 얼핏설핏 깎음말을 읊기는 하겠는데, 그 말은 언제나 그이를 깎아요. 거꾸로 나는 남을 깎아내리지 못합니다. 내가 이냥저냥 읊는 깎음말은 노상 남이 아닌 나를 깎지요.



“이봐, 너희들! 이분한테 사과해!” “이분은 나의 오랜 친구다.”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용서를! 제발!” (46∼47쪽)



  말이 흐르고 생각이 흐릅니다. 이야기가 흐르고 손길이 흐릅니다. 바람이 흐르고 빗물이 흐릅니다. 여기에 우리 삶이 흐르고 새롭게 짓는 사랑이 흘러요.


  모든 흐르는 숨결은 흐르다가 멎기도 하고, 흐르다가 굳기도 하며, 흐르다가 넘치기도 해요. 미운 마음이 흘러넘칠 때가 있다면, 기쁜 노래가 흘러넘칠 때가 있어요.


  우리가 입으로 읊거나 손으로 적거나 생각으로 담는 ‘말’은 어떤 ‘생각’을 그리는 ‘씨앗’일까요? 우리는 왜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할까요? 우리는 왜 ‘나보다 남’을 더 쳐다보려 할까요? 우리는 왜 ‘남이 아닌 나’를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길하고 엇갈리기 일쑤일까요?



“그 지하실에는 특별한 인간만 들어갈 수 있어. 그러니 네가 그 특별한 인간이란 걸 모두에게 얘기할 수 있게 해줘. 나 혼자 멋대로 널 거기에 들였다간, 다른 사람들이 엄청 화낼 테니까. 오늘 밤 집회에서 말할 거야. 그 자리에 참석해 줘.” (67쪽)



  그리는 만화마다 아픈 사람이 으레 튀어나오는 오시미 슈조 님인데, 《해피니스 7》(오시미 슈조/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20)을 보면서 이렇게 아픈 사람을 새삼스레 무더기로 만나는구나 싶고, 이 아픈 사람들은 왜 스스로 사랑하는 길로 못 갈까 아리송하기도 합니다.


  절집에 가 본들 절집에서 하느님을 못 찾습니다. 거룩책을 편들 거룩책에서 하느님을 못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다 다른 숨결인 하느님인 터라, ‘나한테서 스스로 하느님을 찾지 않’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하느님을 못 보기 마련이에요.


  우리가 아프다면 스스로 튼튼하게 마음이며 몸을 돌보지 않은 탓이에요. 우리가 튼튼하다면 스스로 마음이며 몸을 사랑으로 보듬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슬프다면 스스로 슬픈 길을 걸은 탓이요, 우리가 기쁘다면 스스로 기쁜 노래로 피어나기 때문입니다.



“저, 저기 뭐 하나 여쭤 봐도 될까요?” “뭔데?” “고, 고쇼 유키코 씨는, 아직도 신과 대화하고 계신가요? 벌써 5일이 지났는데요!” (121쪽)



  종교 무리는 종교 무리입니다. 정치 무리는 정치 무리입니다. 그저 무리입니다. 무리를 지어서 참나(참된 나)하고 등돌리도록 몰아세우지요. 우리는 어느 종교를 따라야 하지 않아요. 우리는 어느 정치에 기댈 까닭이 없어요. 오직 우리 마음에서 가만히 샘솟으면서 나비처럼 피어나는 꽃송이 같은 사랑을 바라볼 노릇입니다. 저 정치꾼이 잘하느냐 이 정치꾼이 못하느냐를 가를 노릇이 아닌, 우리 살림길을 스스로 바라보고 아끼면서 즐거이 춤추면서 하루를 맞이할 노릇입니다.


  대통령 지지율이나 정당 지지율이란 얼마나 덧없을까요. 지지율 눈속임이란 얼마나 부질없을까요. 저쪽을 믿거나 따르는 이하고 이쪽을 믿거나 따르는 이는 매한가지예요. ‘나’ 아닌 ‘남’을 바라보면서 믿느라 막상 우리 보금자리를 놓쳐요. ‘남’ 아닌 ‘나’를 바라보면서 사랑할 적에 우리는 스스로 가멸차면서 흐드러진 살림꽃으로 나아갑니다.



“불쌍해라. 그렇게 10년 동안 무시당하고 있었던 거예요? 꼴좋다. 개자식.” (133쪽)



  이웃을 괴롭히는 사람이란, 바로 스스로 괴롭히는 꼴입니다. 이웃한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란, 바로 스스로 손가락질하는 셈입니다. 이웃을 억누르거나 휘두르는 사람이란, 바로 스스로 삶을 잊거나 잃으면서 헤매는 판입니다.


  깎고 싶다면 능금을 깎으셔요. 깎고 싶으면 모과를 석둑석둑 썰어서 달콤가루에 재우셔요. 깎고 싶다면 무를 깎으셔요. 깎고 싶으면 감자를 굵직굵직 썰어서 감자국이나 카레를 끓여요.


  남을 찌르려고 있는 칼이 아닙니다. 부엌에서 살림을 지으려고 있는 칼입니다. 남을 깎으려고 휘두를 붓이 아닙니다. 우리가 손수 지은 하루를 새롭게 바라보면서 즐겁게 아로새기려는 붓입니다.



“당장, 서두르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라. 사쿠라네는, 너희 교주는, 예전에 고쇼 씨를 죽이려 했어.” “뭐?” “그 녀석은 사람을 몇이나 죽였다고. 모르고 있었어? 서두르지 않으면. 가르쳐 줘. 고쇼 씨는 어디 있지?” (154∼155쪽)



  누구보다 튼튼한 사람이 아프더군요. 누구보다 아프던 사람이 튼튼하더군요. 겉이랑 속은 같더군요. 속을 숨길 만한 겉옷은 없더군요. 《해피니스》는 섣불리 어린이한테 보여주기는 어렵습니다. 푸름이한테 쉬 보여주기 어렵다고도 할 만합니다. 적어도 스무 살은 되어야 이 만화를 펼 만하지 싶은데, 만화에 흐르는 사나운 몸짓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철드는 나이인 스물’에 이르러 ‘아픔하고 깎음질하고 사랑하고 손길’이라는 네 갈래를 찬찬히 돌아보면 좋겠어요.


  나를 사랑할 사람이란 바로 나이듯, 나를 깎아내릴 사람도 바로 나입니다. 어떻게 하겠나요? 나를 스스로 사랑하겠습니까? 아니면, 나를 스스로 깎겠습니까?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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