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창비시선 445
박형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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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45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

 박형준

 창비

 2020.6.25.



  서울에서 고흥까지 틈틈이 찾아와서 빈터에 풀꽃이랑 나무를 심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문득 저를 부르더니 우리 집에서 고양이를 기르느냐고 묻습니다. 저희는 아무 짐승을 안 기릅니다. 다만 마을고양이 가운데 가장 비실거리던 아이가 다른 마을고양이한테 얻어맞고 치이다가 우리 집 처마 밑에서 잠만 얻어자려고 찾아들 뿐입니다. 이 마을고양이가 그분이 일구는 꽃밭에 똥을 누고는 똥을 덮는다면서 흙을 판다더군요. 힘센 고양이한테 시달리다가 밤잠을 얻어 자려고 찾아오는 마을고양이인 터라 이 고양이한테 뭐라 말하기는 어렵지요. 아니, 마을고양이더러 “똥을 가려!” 하고 말할 수 있을는지부터 아리송합니다. 《줄무늬를 슬퍼하는 기린처럼》을 읽다가 ‘시란, 머리로 짜맞추는 글재주는 아닐 텐데’ 싶었습니다. 기린이란 짐승이 참말로 줄무늬를 슬퍼할까요? 기린한테 물어봤을까요? 기린하고 마음을 나누었을까요? 동물원 아닌 들판을 달리고 숲에서 풀노래를 부르는 기린하고 사귀었을까요? 사람이 사람이라면, 상냥하게 사랑하는 살가운 숨결이 새롭게 샘솟으면서 슬기롭게 속삭이기 때문이겠지요. 글재주 아닌 살림노래가 그립습니다.



당신과 늪가에 있는 샘을 보러 간 날 / 샘물 속에서 울려나오는 깊은 울림에 / 나뭇가지에 매달린 눈(雪)이 / 어느새 꽃이 되어 떨어져 / 샘의 물방울에 썩어간다 / 그때 내게 사랑이 왔다 (달나라의 돌/10쪽)


꽃은 무릎 같다 / 꽃 앞에 서면 마음이 어려진다 / 그리하여 나는 나른하기만 한 / 내 앞을 지나가는 다정한 노부부의 / 무릎 나온 바지를 찬양하게 된다 (오후 서너시의 산책 길에서/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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