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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 9
카루베 준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숲노래 만화책
만화책시렁 277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 9》
준코 카루베
김기숙 옮김
서울문화사
2000.1.15.
아름답지 않다면 만화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웃음을 다루든 슬픔을 짚든, 모름지기 만화라면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웃기는 척하거나 눈물을 쥐어짜며 짐짓 아름다운 시늉뿐인 만화도 꽤 있습니다. 꾸미는 장삿속이에요. 이는 만화판뿐 아니라 영화판이나 글판이나 그림판에도 수두룩하게 있어요. 꾸미면서 남을 밟고 올라서야 뭔가 대단히 이루었다고 여기곤 합니다. 여기에는 신문·방송이 으레 거들어요. 광고 없이 나오는 신문·방송이 있을까요? 그런데 숱한 신문·방송은 어떤 광고를 싣나요? 광고도 장사도 나쁘지 않습니다만, 이 별에서 서로 사랑하는 슬기로운 살림을 그리는 광고를 그들이 얼마나 다뤄 봤을까요?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 9》을 읽으며 아름다이 흐르는 빛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소리를 못 듣거나 팔다리가 없거나 눈으로 못 본다고 해서 ‘장애’로 여겨 버릇합니다만, 착하거나 곱거나 사랑스럽거나 참한 마음이 없는 모습이야말로 ‘장애’이지 않을까요? 어깨동무를 모르고, 숲을 모르며, 들꽃을 마구 밟는 이야말로 ‘장애’가 아닐까요? 입으로 말하지 않으나 손으로 노래하는 사람이 있어요. 귀로 듣지 않으나 마음으로 읽는 사람이 있어요. 오늘 이곳에서 학교는 무엇을 가르치고, 공무원은 어떤 행정을 펴는가요. ㅅㄴㄹ
“우리 일이라면 걱정하지 마. 그렇게 깨지기 쉬운 관계가 아니니까.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되더라도 서로 사랑한다는 자신이 있어.” (113쪽)
“내가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건, 네가 그렇게 말하면서 떠나보내 주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이번엔 네가 행복해질 차례야. 안심하고 떠나렴. 응?” (117쪽)
‘어린아이란 이런 식으로 엄마를 받아들이는 건가? 있는 그대로의 엄마를.’ (155쪽)
‘미안하다, 아가야. 용기 없는 엄마를 용서해 주렴. 다음에 태어날 때는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엄마에게서 태어나렴. 다음에 엄마에게 또 와 줄 거지? 엄마라고 불러 줄 거지?’ (156∼1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