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마리코 9
오자와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여든살림 지나 온살림



《80세 마리코 9》

 오자와 유키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11.30.



  나라가 차츰 늙어 간다고 합니다. 어려운 말로는 ‘고령화 사회’일 텐데, 쉽게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씨로는 ‘늙는 마을’입니다.


  늙는 마을이란 나쁠까요. 또는 좋을까요. 나쁘지도 좋지도 않을까요.


  마을이 늙는다면, 늙은 사람만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나라가 늙는다면, 참말로 나라에 늙은 사람이 가득하다는 말입니다. 어린이하고 푸름이에다가 젊은이가 꿈날개를 펴면서 날아오를 만한 터전이 아니라는 얘기이지요.



“나나미도 가엾네. 우리 딸아이가 생각난다.” “네?” “마음씨 고운 아이란다. 내가 잘 키웠지. 나나미도 아빠 엄마한테 사랑 듬뿍 받으면서 커서,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착한 아이야.” (23쪽)



  마을이며 나라가 너무 어리기만 해도, 너무 젊기만 해도 치우칩니다. 너무 늙기만 해도 치우치는 판입니다. 아기, 어린이, 푸름이, 젊은이, 늙은이, 이렇게 고루 있으면서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는 터전이 아름다우면서 살기에도 좋겠지요. 어린이한테서 새롭게 피어나는 꿈을 바라보고, 젊은이한테서 꿈을 지피는 땀방울을 바라보며, 늙은이한테서 꿈을 가꾸며 얻은 슬기를 바라봅니다. 푸름이는 이들 사이에서 스스로 새롭게 나아가고픈 꿈을 익히는 눈빛을 바라보겠지요.



‘사랑은 당연히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몇 년을 수십 년을 거듭 쌓아왔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거야.’ (29∼30쪽)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는 큰고장에 어린이랑 푸름이랑 젊은이가 지나치게 쏠렸습니다. 이 나라 큰고장에는 숲도 바다도 들도 없는데 어린이·푸름이·젊은이가 지나치게 많아요. 이 나라 시골이며 숲이며 바다이며 들에는 너무 늙은이투성이입니다.


  이 골을 슬기롭게 풀 길은 틀림없이 있어요. 일자리나 배움터를 시골로 옮겨야 하지 않아요. 살아가는 마음이며 생각을 확 엎어야지요.


  몸이 아프면 어마어마한 돈도 부질없습니다. 간당간당한 목숨줄이라면 엄청난 이름값도 덧없습니다. 골골대고 앓다가 곧 죽을 판이라면 무시무시한 주먹힘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돌림앓이가 판을 치는 2020년 한국은 어떤 살림길을 내다볼까요? 왜 이 나라는 한 해쯤 대학입시를 아예 그만두려는 생각을 못 할까요. 무서워서 엄두를 못 낼까요? 그러나 돌림앓이가 걱정스럽고 무서우며 두렵기에 학교를 한 달 넘게 쉬었지요. 언제 학교를 다시 열는지 모를 노릇이지요. 하늘길도 거의 다 막히거나 막아요. 왜 그런가요? 그 어떤 것보다 우리 몸을 튼튼하게 건사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이 첫째이기 때문입니다.


  여든 살 할머니가 ‘누리잡지’ 편집장이 되어 ‘늙어버린 마을’을 뒤집어엎는 생각을 새롭게 지피는 이야기가 흐르는 《80세 마리코 9》(오자와 유키/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을 읽으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여든 살 할머니는 일할 적에 스스로 몇 살인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저 하고픈 일을 합니다. 더구나 하고픈 일을 할 적에는 ‘여든이란 나이까지 살아오며 지켜보고 겪고 마주하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웃고 울며 노래하고 춤춘 모든 걸음걸이’가 새 앞길에 새 빛줄기가 되는 줄 깨닫습니다.



“고부간이란 참 어려운 거야. 좋아서 맺게 된 관계가 아니니까. 내가 낳았다고 해도 나와 코지는 다른 인간이고, 코지가 선택한 당신은 내가 선택한 인간이 아니야. 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더 숨이 막히게 되지.” (50쪽)



  열여섯 살 푸름이한테 ‘어느 대학교에 시험을 치르려 하느냐’만 묻는다면 삶이 메마르지 않을까요? 열여덟 살 푸름이한테 ‘어느 일터에 들어가서 돈을 얼마나 벌려 하느냐’만 묻는다면 삶이 팍팍하지 않을까요? 열두 살 어린이한테 ‘인문교양 학습만화’만 손에 쥐어 준다면 삶이 따분하지 않을까요?


  스물여섯 살 젊은이는 무엇을 바라보아야 활짝 웃을 만할까 하고 생각할 때입니다. 서른여섯을 지나고 마흔여섯을 거치며 쉰여섯을 가로질러 예순여섯을 달리다가 일흔여섯을 뛰어넘고 여든여섯을 노래하는 나이에는 하루를 어떻게 지어서 어떤 기쁨슬픔을 나누면서 환하게 빛나는가를 돌아볼 때라고 여겨요.



“청과점 사장입니다. 40년간 채소를 팔아 왔습니다. 모델은 처음이에요! 잘 부탁 드립니다!” (101쪽)



  청와대를 없애면 좋겠습니다. 구태여 꽉 맏힌 집에 틀어박혀 책상맡에 앉을 까닭이 없어요. 굳이 서울 한켠에 머물지 말고 다달이 나라 곳곳을 돌면서 조그마한 길손집 한켠을 일터로 삼아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경호원이란 사람으로 둘둘 감싼 우두머리가 아닌, 손수 밭을 가꾸고 손수 밥을 짓고 손수 빨래랑 설거지를 하고 아기를 돌보는 어버이다운 마음결로 나라일을 돌보는 이가 나라지기로 서면 좋겠어요.


  어깨띠를 두르고서 목청 높여 ‘나를 찍으시오’ 하고 굽신거리는 이가 아닌, 4월이 눈부신 이맘때 밭자락에서 같이 마늘을 캐고, 숲자락에서 나무를 어루만질 줄 아는 착하고 참한 사람이 벼슬아치 노릇을 하면 좋겠습니다. 바람을 알고 별을 알며 흙을 알고 풀꽃나무를 아는 이가 나라일이며 벼슬을 맡을 적에 이 나라가 아름답게 피어나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상점가가 계속될지 그거야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손님이 와준다’는 게 제일 행복해요.” (127쪽)



  만화책 《80세 마리코》에 나오는 마리코 할머니는 여든을 넘긴 나이입니다. 할머니 곁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제 한국도 일본도 어디나 늙은 사람이 가득하니까요. 일흔 줄에도 옷집을 꾸리고, 푸성귀집을 이끌며, 찻집을 보듬는 이들은 그동안 무엇을 보고 느끼며 생각했을까요. 오랜 나날 한길을 파면서 마을살림을 지은 이들 마음에는 어떤 새싹이 돋을까요.


  고작 여든밖에 안 된 나이에 ‘스스로 신나서 하는 일’이 없이 골칸에 갇혀서 골골거리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쳐다보아야 하는 어린이나 푸름이라면, 이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앞으로 지피고 싶은 꿈이 자랄 만할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아,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살려나?’ 하는 생각을 얼결에 품지 않을까요. ‘아, 나도 저 나이에 저렇게 빛나면서 꿈길을 가면 즐겁겠네!’ 하는 마음을 가만히 품도록 우리 삶터를 구석구석 가꿀 노릇이리라 생각해요.



‘내일 일은 모른다. 답이란 없다. 하지만 지금을 바꾼다면 다른 내일이 올지도 모르지.’ (131쪽)



  나이는 몸에 깃든 해입니다. ‘해’는 하늘에서 이 별을 비추는 별이면서, 삼백예순닷새를 아우르는 이름입니다. 여든 ‘해’를 몸에 품는 동안 어떤 ‘해’를 마음에 품은 삶일까요.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란 ‘해를 먹는다’는 뜻이지 싶습니다. 철마다 다른 숨결을 먹고, 네 철을 꾸러미로 여민 해를 먹으며, 숱한 바람이며 풀꽃나무이며 노래이며 빛이며 사랑을 고스란히 먹기에 ‘해’를 차곡차곡 모두지 싶습니다.


  온살림을 바라보는 마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혼자 차지하면서 꼭두에 서는 다툼판이 아닌, 고루두루 어우러지는 마을길을 닦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요. 대학입시를 없애기를 바라요. 전쟁무기를 없애기를 바라요. 저마다 다른 살림지기로 살아가면서, 서로서로 곱게 살림빛을 지피기를 바라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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