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숨은책 266


《르네상스》 53호

 편집부

 세화

 1993.3.1.



  고등학교 1학년이던 1991년까지는 한국에서 나오는 모든 만화잡지를 보았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인천에는 ‘만화대여트럭’이 있었고, 대본소조차 없는 가난한 골목마을을 돌며 작은 짐차에 만화책·만화잡지를 가득 싣고서 300원·500원에 빌려주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이레나 달마다 새 잡지가 나오기에 묵은 잡지는 값싸게 팔아 주셨고, 꼭 갖고 싶은 만화잡지는 만화짐차 아저씨한테서 장만했습니다. 빌린 만화잡지를 사흘 뒤에 돌려줄 생각을 하며 날마다 몇 벌씩 읽었는지 모릅니다. 이러다가 살림집이 옮기면서 더는 만화잡지를 빌려읽지 못했고, 1994년에 대학교에 들어가고서 《르네상스》가 더는 안 나온다는 이야기를 귓결로 들었습니다. 어쩐지 찡하고 슬퍼서 둘레에 이 얘기를 했더니 ‘르네상스라는 만화잡지’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만 수두룩했습니다. 만화잡지를 보면서도 대학교에 들어온 사람은 없는 셈일까요. 《르네상스》 53호를 보면 ‘knight & lady’ 알림글로 “이젠 당당히 일본 만화일러스트 책과 비교하세요!”를 적습니다. 몇 쪽 뒤에는 ‘겨울이 끝나는 날’, ‘유리가면’, ‘남녀공학’ 해적판 광고가 나옵니다. 예전에는 ‘해적판’이란 말도 몰랐어요. 그저 만화라면 좋았습니다. 만화는 새물결이었거든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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