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0.3.26.
《펭귄표 냉장고》
다케시타 후미코 글·스즈키 마모루 그림/김숙 옮김, 북뱅크, 2001.10.30.
깊게 판 자리는 바깥바람이나 바깥볕이 어떠하든 시원한 결이 흐른다. 어느 모로 보면 춥거나 차고, 어느 모로 보면 싱그럽다. 흙으로 둘러싼 구덩이를 파서 건사하니, 또 우물물에 담그니, 나물이며 먹을거리를 두고두고 누리는 길이다. 글을 새긴 나무판이라면 한 해 내내 서늘하면서 그늘지고 바람이 잘 드는 데에 간직한다. 오늘 우리는 숲이 베푸는 싱싱칸이나 서늘터를 치우고서 냉장고를 들인다. 《펭귄표 냉장고》는 전기를 먹고 여러 톱니가 돌아가기에 차가운 바람을 품기만 하지 않는 냉장고라는, 펭귄이 슬그머니 냉장고에 같이 살기에 이러한 세간을 쓸는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지은 어린이책이다. 아이는 냉장고에 깃든 펭귄을 만난다. 어른들은 냉장고에서 먹을거리가 하나둘 사라질 적마다 아이를 꾸중한다. 어른이 생각하기에 냉장고에 펭귄이 깃들 길이 없을까? 냉장고에 펭귄이 산다는 얘기를 터무니없다고만 여길까? 아이가 들려주는 말을 어느 만큼 마음을 열고서 맞아들일 만할까? 그저 사다가 쓰는 세간이 아닌, 우리가 손수 지어서 누리고 나누는 세간이라면, 이 세간에 깃드는 숨결이나 넋을 생각한다. 손수 젓가락을 깎아서 쓰면 젓가락을 고이 다룬다. 손수 집을 지어서 살면 이 집을 우리 몸처럼 돌본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