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 창비시선 145
김수영 지음 / 창비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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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26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

 김수영

 창작과비평사

 1996.2.28.



  낱말을 하나하나 벼리듯 글을 엮습니다. 밭을 한 땀 한 땀 온힘을 들여 가꿉니다. 설거지를 꼼꼼하게 합니다. 밥을 멋들어지게 차립니다. 꽃잎에 손끝을 대고서 눈을 감습니다. 두 팔을 벌려 폴짝폴짝 뛰면서 구름한테 나아가려 합니다. 마당에서 빙그르르 돌면서 봄날 찾아온 제비를 따라 휙휙 어깻짓을 합니다. 뚜벅뚜벅 걷고 보니 어느새 다 옵니다. 터덜터덜 걷다가 풀밭에 풀썩 앉아서 멍하니 해바라기를 합니다. 꾸벅꾸벅 조는 아이를 품에 안고서 고갯마루를 넘습니다. 언제나 똑같은 하루란 없습니다. 모두 다른 새날입니다.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은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기에 술이 떠오른다는 뜻일까요, 술을 바친다는 뜻일까요, 술을 같이 즐긴다는 뜻일까요. 여러 가지를 아우른 뜻이기도 할 테고, 심심한 하루를 털어내려는 몸부림이기도 할 테지요. 숲에 사는 늑대가 하늘에 대고 울부짖습니다. 숲을 파헤치는 모진 사람들 때문에 아파하는 숲을 그리면서 울부짖어요. 봄을 맞이한 풀개구리에 멧개구리가 봄비를 반기면서 노래해요. 목청껏 노래하고, 날벌레를 날름 잡고서 노래합니다. 어디로 튀든 좋습니다. 어디로 가든 길입니다. 눈가림을 하지 않는다면, 눈속임으로 겉몸을 감싸지 않는다면, 그저 노래가 됩니다. ㅅㄴㄹ



나는 이제 꼬리를 감추지도 않는다 / 송곳니를 숨기지도 않는다 / 허공을 향해 밤새도록 숨이 끊어질 듯 울부짖는다 (울부짖는 늑대/15쪽)


시냇물 따라 저도 모르게 꺽꺽 울다가 징검돌에 나앉아 사팔뜨기 큰 눈을 껌벅거리며 사방을 둘러본다 // 젖은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맑은가 (난쟁이 청개구리/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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