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조선일보 사랑 : 조선일보를 사랑하든, 조중동을 좋아하든 마음대로 할 노릇이다. 한겨레·경향을 사랑해도 되고, 어느 신문이나 방송이든 마음대로 즐기면 된다. 다만, 신문이나 방송이 어떤 속내이며 구실인가를 알아야 하고, 그들 신문하고 방송이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고, 오늘 어떤 속셈이나 꿍꿍이나 꾀를 부리는가를 읽어내야겠지. 이러한 눈썰미가 없다면 ‘기생충 서민 교수’가 2020년 3월 25일치 〈조선일보〉에 손수 써서 실은 “‘문빠’가 언론 탄압하는 시대, 조선일보 없었다면 어쩔 뻔“ 같은 글을 쓰겠지. 어떤 이는 동인문학상이고 조선일보 신춘문예이고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동인문학상이나 이상문학상뿐 아니라 조중동 신춘문예에도 발을 담그지 않는다. 어떤 이는 문학은 문학이고 상은 상이라면서 아랑곳하지 않으며, 어떤 이는 글을 쓰는 길이란 아무 신문이나 출판사나 방송에 기웃대지 않으면서 삶길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여긴다. 그나저나 ‘언론 탄압’이란 뭘까? 무엇이 ‘언론 탄압’이고, 무엇이 ‘매판 언론’이며, 무엇이 ‘독재·제국주의 일본에 빌붙으며 사람들 피를 빨아먹고 죽음수렁으로 내몬 언론’일까? ‘기생충 서민 교수’는 책을 팔고 싶으면 책광고를 하고, 책소개를 하면 될 텐데, 왜 ‘조선일보 사랑타령’을 할까? 아, 그렇지. ‘조선일보 사랑타령’이 바로 〈조선일보〉를 읽는 이한테 책을 알려서 파는 일이 되겠구나. 잘 가셔요. 그대 사랑 조선일보 품으로. 2020.3.2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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