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어진 현 - 박일환 시집 삶의 시선 28
박일환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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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읽기

노래책시렁 120


《끊어진 현》

 박일환

 삶이보이는창

 2008.12.15.



  나무가 쩍쩍 소리를 내며 쪼개집니다. 열 살로 접어든 작은아이가 도끼질에 사로잡힙니다. 대나무 마디를 어림해서 톱으로 켜고 둥그런 나무판에 대고서 척척 내리칩니다. 대나무로 널을 이어 발판을 꾸밉니다. 칼로 슬슬 깎아 젓가락을 삼습니다. 작은아이 몫 젓가락을 마무리하고서 아버지한테 한 벌을 깎아 내밉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쏴르랑쏴르랑 춤추던 대나무는 어느새 우리 집 곳곳으로 옮겨 옵니다. 작은아이가 깎은 대젓가락을 쥘 적마다 이 나무가 그동안 만난 바람 새소리 빗방울을 느낍니다. 땅에 뿌리를 박을 적에도 든든한 나무요, 우리 곁에서 세간이나 살림으로 바뀔 적에도 아름다운 나무예요. 《끊어진 현》은 교사란 자리에서 일하며 마주한 삶이며 사람을 몇 마디 이야기로 풀어내려 합니다. 벅차서 쉬고 싶은, 떠나고 싶은, 벗어나고 싶은, 하소연하고 싶은,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흐릅니다. 틀에 박힌 교과서를 펼쳐야 하니, 교사란 일자리가 팍팍할 만하겠지요. 그러나 시쓴님더러 꽃나무 좀 올려다보며 나무빛을 느끼라 하는 다른 교사가 있어요. 어디에 서든 안 대수롭지요. 즐겁게 꿈꾸는 마음이라면 노래할 수 있어요. 이제 줄을 이어 보셔요. ㅅㄴㄹ



아이들 가르치려 학교 가는 길 / 번잡한 앞길 버리고 호젓한 뒷길로 간다 / 혼자 휘어드는 좁은 골목길 / 담벼락에 나팔꽃 줄지어 피었는데 / 활짝 열린 봉오리 속으로 / 쏙 들어가 한숨 자고 싶다 / 등굣길 서두르는 아이들도 불러다 / 봉오리마다 한 명씩 들어앉히고 싶다 / 순하게 몸을 말고 들어앉아 / 잡스런 세상 말들 삭혀 내린 뒤 / 작고 단단한 씨앗으로 맺혀 / 세상아, 요 건방진 놈아 (나팔꽃 봉오리/14쪽)


“선생님, 잠깐 그 자리에 서 보세요” / 돌아보니 여선생님 한 분 빙긋이 웃는다 / “향기 좀 맡고 가시라구요” / 고개를 젖히니 바로 머리 위에 / 목련이 흐드러졌다 (향기/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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