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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마리코 7
오자와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숲노래 만화책
기뻐서 너를 만나고 나를 사랑하고
《80세 마리코 7》
오자와 유키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9.30.
“어째서 안 쓰는 거야? 지금도 당신은 대단한데. 독자가 그렇게나 기다리고 있는데. 이대로 있으면 당신은 한 글자도 못 쓸지도 몰라. 베스트셀러 작가 코자쿠라 쵸코의 마지막 작품이 다른 사람이 쓴 거여도 상관없어?” (23쪽)
“난 기뻐요. 60살이나 차이가 나는 당신이 같은 곳에서 초쿄 씨를 바라보고 있다니.” (60쪽)
“손님은 네 고집에 돈을 내는 게 아니야. 자신의 기쁨에 돈을 내는 거지. 그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손님은 돌아오지 않아.” (123쪽)
“작가는 언제나 집안에만 있는데, 언제 낡은 옷이 생기겠어. 24시간 기분 좋게 지내고 싶잖아. 언제든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싶다고.” (146쪽)
“날마다 입고서, 좋아하는 패션을 소화하는 자신을 만들어내는 거야! 뭐야, 치에조.” “쵸코 씨는 우리 의견은 무시하는구나. 우리 옷은 아무렇지도 않게 폄하하면서.” (150쪽)
할아버지가 되었기에 글을 못 쓰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라서 요즘 물결을 모르는 채 글을 쓰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요즘 물결을 맞추어야 읽을 만한 글이 되지 않습니다. 옛날스러워야 멋진 글이 아닙니다. 요즘멋이든 옛날맛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싱그러이 살아서 흐르는 글이란 언제나 하나라고 느껴요. 바로 우리 스스로 오늘을 지어서 사랑이 넘실넘실하는 글입니다.
여든 살 할머니하고 스무 살 아가씨가 한 사람을 바라봅니다. 둘 사이에는 예순 해라는 틈이 있지만, 둘이 바라보는 한 사람이 남긴 글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다른 눈빛이면서 같은 마음으로 알아요. 이리하여 둘은 동무가 되지요. 예순 해를 가로지르는 마음동무요 글동무이자 일동무에다가 수다동무가 됩니다.
2018년 한가을에 첫걸음이 한국말로 나온 만화책은 2019년 끝가을까지 열걸음이 나옵니다. 모두 몇 걸음으로 이야기를 갈무리할는지 모르겠는데, 이 가운데 《80세 마리코 7》(오자와 유키/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9)을 읽으면 ‘좋아하는 길’을 차근차근 짚습니다.
여든 살이 되도록 소설을 쓴 할머니 한 분은 ‘늘 집에 오래 머물며 글을 쓰니’까 헐렁하거나 수수한 차림이 익숙합니다. 집에서 글을 쓰는데 굳이 차려입을 까닭이 없다고 여겨요. 다른 할머니는 ‘집에 오래 머물며 글을 써야 하니’까 더 빛나고 고우며 사랑스러운 옷이 익숙합니다. 바깥에 나가기 힘든 만큼 집에서 더더욱 빛나는 옷을 누리려는 마음이었다고 해요.
늘 쓰는 살림이니 가볍고 값싸며 투박한 것을 놓을 수 있습니다. 늘 쓰는 살림이기에 오직 하나이면 된다는 마음으로 예쁘고 값지며 반짝이는 것을 놓을 수 있습니다. 두 길은 다른 듯하면서 같아요. 오늘 여기에서 마주하는 매무새는 다르지만, 늘 곁에 두면서 아끼려는 마음은 같지요.
우리는 서로 만납니다. 일 때문에 만나기도 할 텐데, 무엇보다 서로 좋기에 만납니다. 서로 마음에 들기에, 서로 마음이 맞기에, 서로 마음으로 아낄 줄 알기에 만납니다. 마음으로 사귈 수 있는 사이가 아닌 채 그저 일 하나로만 만난다면 어떨까요? 아마 기운이 쪽 빠지겠지요? 일 때문에 만나더라도 마음이 따사로이 흐르는 사이라면, 일은 일대로 알뜰히 하고, 서로서로 기운이 새로 샘솟겠지요?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는 우리 몫입니다. 돈을 벌어야 해서 어느 일을 좀 힘들거나 고단하게 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벌어야 하더라도 그 힘들거나 고단한 일을 방긋방긋 웃고 노래하는 몸짓으로 할 수 있어요. 돈을 벌어야 한다는 무게에 어깨가 무거워 그만 짜증을 잔뜩 부리거나 억지웃음으로 감쌀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기에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고, 저렇게 해도 됩니다. 어떠한 길을 가든 우리 마음이 흐르는 결을 찬찬히 짚으면서 스스로 기쁠 수 있으면 넉넉하지 싶습니다. 기뻐서 너를 만납니다. 기뻐서 나를 사랑합니다. 너를 만나며 기쁘고, 나를 사랑하며 기쁩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늘 내 이야기를 재미나게 되새깁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