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19.12.12.
《검은 여우》
베치 바이어스 글/햇살과나무꾼 옮김, 사계절, 2002.2.28.
이레쯤 앞서부터 곁님이 바늘을 깎는다. 우리 집에는 이런 나무 저런 나무가 제법 있다. 뜨개질을 할 적에도 온하루를 쏟아서 길디긴 날을 한 땀 두 땀 나아가는 곁님은, 겨울볕을 먹으면서 여러 날에 걸쳐서 바늘을 깎고 다듬는다. 손수 깎은 뜨개바늘은 값을 매길 수 없겠지. 손수 지은 뜨개옷도 매한가지이다. 삶이 다 그렇지 않을까? 우리가 스스로 기쁜 하루를 누리려고 지은 살림에 어떤 값을 매길까? 나물 한 줌에, 무 한 뿌리에 어떤 값을 매겨야 알맞을까? 온사랑을 담아서 쓴 동시 한 꼭지나 책 한 자락에 어떤 값을 매겨야 걸맞을까? 사고파는 값이 아니라, 즐기거나 나누거나 사랑이 흐르는 빛일 적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오늘이 되겠지. 《검은 여우》를 처음 쥔 지는 여러 해 되었으나 그만 까맣게 잊었다. 책상맡에서 퍽 오래 먼지만 묵은 책을 탈탈 털어서 펴는데 어느새 마지막 쪽을 넘긴다. 여우하고 마음으로 생각을 나눈 아이 마음이 대견스럽고, 이 아이를 너그러이 살핀 어른들이 고맙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라는 별이 꽝 하고 터지지 않는 까닭을 알겠다. 비록 총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총을 팔아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 있지만, 맨몸으로 따사로운 빛을 나누는 아이들이 있기에, 이 별은 푸르게 빛나는 보금자리가 될 테지.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