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스코어 걸 2
오시키리 렌스케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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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시키는 대로만 하니 즐거울 수 없지



《하이스코어 걸 2》

 오시키리 렌스케

 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9.30.



“저 막과자집 말이지, 할머니도 나이가 많아서 이제 곧 문을 닫는데. 할머니 기운 내라고 매일같이 다니고는 있지만, 아깝게 됐어.” (25쪽)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어느 때부터인가 게임기하고 오락실에 빠집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붙이는 재미나 즐거움’이란 없습니다. 학교 바깥에서 게임기를 만지거나 오락실을 드나들 적에 비로소 활짝 핀 웃음꽃이 될 뿐, 다른 데에서는 어떠한 일도 재미나 즐거움이 되지 않습니다.


  학교에 재미가 없다면 학교를 다녀야 할까요? 학교가 즐겁지 않은데 학교에 머물러야 할까요? 학교에서 마주하는 또래가 마음을 북돋우거나 열지 않는데, 학교에서 동무를 사귈 수 있을까요? 학교에서 이끄는 어른인 교사가 삶을 슬기로이 바라보도록 가르치지 않는데 보람이 있을까요?



“처음부터 못 한다고 포기하면 어쩌자는 거야? 직접 해보고 도저히 못 하겠으면 그때 나한테 말해. 그럼 내가 멋지게 시범을 보여줄 테니까.” (50쪽)



  다른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는 어버이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릅니다. 둘레 어른이 보기에 어떠한 말썽도 부리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아이들한테 거울이 될 만하다고 여깁니다. 다만, 이 아이는 둘레 또래나 어른한테 마음을 열지 않는데, 스스로 마음을 열지 않는 줄 그닥 느끼지는 않습니다. 살아가며 어떤 길을 걸어야 즐거운가를 아직 모르고, 살아가는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가도 아직 모를 뿐입니다.


  두 아이를 둘러싼 다른 어른들 눈길은 매우 또렷합니다. 게임기하고 오락실에 푹 잠긴 아이는 말썽쟁이에 앞날이 캄캄하다고 여깁니다. 학교에서 얌전하거나 고분고분할 뿐 아니라 시험점수가 좋은 아이는 앞날이 걱정없거나 밝으리라 여깁니다.


  자, 이런 눈길은 얼마나 알맞을까요?



“질 때마다 짜증 부리는 놈일수록 이기는 보람이 있는 법이야. 오락실은 불량배들의 소굴이 아니라 얼간이들의 소굴이라는 걸 증명해 볼게.” (64쪽)



  만화책 《하이스코어 걸》(오시키리 렌스케/허윤 옮김, 대원씨아이, 2019) 두걸음은 첫걸음에 이어 이야기를 지핍니다. 첫걸음에서는 초등학생인 ‘겜돌이·겜순이’가 게임기하고 오락실에서 마음이 아늑해지는 길을 찾았다면, 두걸음에서는 중학생이 된 ‘겜돌이·겜순이’가 나옵니다.



“스스로에게 충실한 삶이라는 건 경쾌하고 기분 좋은 법이니까.” “야구치, 너는 그래서 항상 즐거워 보이는구나.” “반대로 너는 항상 지루해 보이던데. 취미라곤 공부밖에 없지?” (48쪽)



  게임기나 오락실이 넘쳐나지 않던 때에는 길에 자동차가 드물었습니다. 길에 자동차가 드물었을 적에는 모든 아이들이 길바닥을 골목이나 빈터로 삼았고, 마음껏 뛰고 달리고 노래하고 웃고 춤추면서 놀았습니다. 길에 자동차가 늘면서 아이들은 빈터이자 놀이터를 빼앗깁니다. 길에 자동차가 늘면서 어른들은 길에서 자동차를 더 빨리 달리고 싶습니다. 어른들은 길에서 자동차를 더 빨리 달리면서 아이들이 길에서 얼쩡거리는 몸짓이 싫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길을 모두 가로막으면서 학교하고 학원에 내몹니다. 이러면서 게임기하고 오락실을 건네지요. 몸을 쓰지 못하게 하면서 손가락하고 눈알만 굴리게 한달까요.


  그나마 이런 구석에서 겨우 마음을 푸는 아이가 여럿 있으나, 숱한 아이들은 게임기를 만지지 못하고 오락실 곁에 다가서지도 못합니다. 겜돌이·겜순이는 참하지 않으며 바르지 않은데다가 좋지 않다고 여기는 어른들 눈길이랄까요. 그렇다고 이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골목길이나 빈터를 돌려주지 않습니다.



‘재미있어 보인다, 야구치. 만약 내가 강해진다면 어떤 얼굴을 하려나.’ (119쪽)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삶이란 재미있을 수 없습니다. 시키는 길 말고는 바라볼 수 없는 하루라면 즐거울 수 없습니다. 오늘 숱한 어른은 아이한테 무엇을 시킬까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른뿐 아니라, 나라를 이끈다는 어른이나 교사 노릇을 하는 어른은 무슨 생각일까요?


  이마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 바람을 가르며 노는 아이를 언제 만날 만할까요? 자동차 걱정을 안 하고서 신나게 연을 날리고 나무를 타는 아이를 언제 마주할 만할까요? 아니, 이제 마을 어디에 홀가분하게 타고 오를 나무가 있을까요? 가지를 다 쳐서 젓가락처럼 삼는 소나무를 타고 오르며 놀 수는 없습니다. 가지가 치렁거리면서 곧게 서며 줄기가 우람한 나무여야 아이들이 타고 놀 텐데, 이런 나무를 모조리 없애고 찻길만 늘리고 오락실(이제는 피시방)만 세우는 어른들은 이 삶터 앞길을 어떻게 할 셈일까요?


  놀지 못한 채 자라나면 꿈이 없기 마련입니다. 신나게 뛰놀 적에 비로소 스스로 꿈을 키우기 마련입니다. 놀면서 튼튼한 마음으로 큽니다. 바람을 먹고 햇볕을 마시는 아이들이 아름다이 설 수 있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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